교육과정을 푸는 고리 - 주도성
작성자 : 윤재향 | 등록일 : 2021-08-23 14:26:05 | 조회수 391

내 삶의 주인은 나 : 주도성

 

2021년 현재 볍씨는 21살이 되었습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아이들은 아침에 등교하면 쌀뜨물로 설거지 하고, 우리가 먹을 밥을 짓고, 필요한 것들을 살펴 만들고, 농사짓고, 자연과 자원을 아끼며 생명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그 밖에도 많은 교육철학들이 그 맥락을 유지해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20년 가까운 시간을 살아내며 만들어진 현재 볍씨의 모습은 많은 고민과 도전, 새로운 시도들 또한 담고 있습니다.

 

주도성과 자발성을 목표로 한 교육과정의 변화

 

학교를 세웠던 초창기에는 교육의 목표와 가치, 그리고 그것을 담아낼 수 있는 문화와 교육과정을 고민하면서 새로운 것들을 함께 만들어가던 시기였습니다. 그렇게 5-6년을 보내면서 기본적인 교육과정과 문화가 만들어졌고 이후로는 교육과정과 문화를 다지는 시기였습니다. 그 시기 교사들의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주체적이고 역동적인 아이들의 모습이 수동적이고 안주하려는 모습으로 조금씩 변화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아이들은 더 이상 학교 안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으려 했고, 이미 짜여진 교육과정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말 잘 듣는 모범생보다는 이리저리 들쑥날쑥 해도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꾸리기를 바랐던 애초의 기대는 조금씩 사라져 가고 있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무엇을 바꿔야 할지 잘 몰랐지만 배움을 고리로 둔 학교에서 교육과정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시작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2012년 11월부터 시범적으로, ‘자기 생활 조직’, ‘자기 배움 계획’을 아이들 각자가 세운다는 목표아래 ‘시간표가 없는’, ‘미리 짜여진 교육과정’이 없는 학기를 시도했습니다. 원래 당연하게 있던 수업들이 없어지니 아이들은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에 당연하게 했던 청소, 밥짓기를 비롯해 글쓰기, 셈, 악기 수업 등 모든 배움들이 꼭 필요한 것인가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짜여져 있던 배움들이 사라지니 불안해하는 모습도 생겼습니다. 아이들 스스로 시간표, 수업들, 지기 규칙을 만들자고 제안했습니다. 그 시도 이후에 교사도 아이들도 수업 시간표는 당연하게 교사로부터 학생에게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영향력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시간표에 스스로 만들어 넣은 수업들은 예전에 본인들이 경험했던 방식의 수업들을 다시 선택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여전히 배움에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모습이 보였습니다.

2014년에는 배움의 주도성이란 ‘원하는 배움을 선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해 ‘큰모임’이라는 이름의 교육과정을 시작했습니다. 3학년부터 8학년까지 아이들이 원하는 주제를 정해서 모임을 꾸리고, 배움의 주제부터 과정, 방식 등을 교사와 함께 스스로 정하고 진행하는 배움 과정을 시도했습니다. 일주일에 2일~3일은 큰모임으로 진행되어 ‘교과통합’, ‘연령통합’, ‘자기 주도적 배움 과정 설계’가 전면적으로 시도되었습니다. 현재는 3~5학년이 일주일에 하루 ‘큰모임’이라는 이름으로 교육과정을 진행하고 있어서 이런 배움의 과정이 축소된 것처럼 보이지만, 이 배움 과정은 볍씨 전체의 교육과정에 영향을 미쳤고, ‘큰모임’과는 다른 이름지만 1학년부터 8학년까지의 교육과정 안에 학년마다 수준에 맞는 방식과 단계로 녹여져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교육과정의 변화를 위한 다양한 시도는 광명에서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선이골에서의 독립학사 기간을 거쳐, 2013년에는 4개월간의 9학년 제주도 독립학사 과정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2014년에는 1년간의 제주도 독립학사과정을 정착시켰습니다. 8년간의 배움을 마무리 하는 의미와 더불어, 부모님과 떨어져 의식주 모든 것들을 스스로 해결하며 자기 삶의 진정한 주인으로서 몸과 마음을 더욱 성장시키는 과정으로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습니다.

 

더 높은 단계로서의 주도성

 

주도성 있는 아이들을 바라며 교육과정의 변화를 끊임없이 시도했던 경험들 속에서 볍씨는 주도성의 몇가지 중요한 특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원하는 배움을 ‘선택’할 때, 아이들은 그 배움을 주도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 ‘동기부여’로서의 힘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원하는 배움을 선택하더라도 그것을 끝까지 해 낼 수 있는 힘을 자동으로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경험했습니다. 배우는 과정에서 맞닥뜨린 어려움을 넘으며 끝까지 배움을 이어나갈 힘은 더 높은 단계의 주도성이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더 높은 단계로서의 주도성을 가지기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자치력

“저요! 저요! 내가 가져갈래요. 내가 읽을래요.” 1~3학년 아이들은 뭐든 해보고 싶어 합니다. 궁금한 것을 알고 싶은 욕구, 해보면서 방법을 알아내는 모습, 어려울까 하는 걱정 뒤에 숨기보다는 해보는 걸 선택하는 모습이 많이 보입니다. 즐거운 배움이던 힘든 배움이던 경험하면서 몸으로 익힌 능력들이 또 다른 능력을 키우는 바탕의 힘이 됩니다.

4~5학년과 청소년들에게 자치력은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기위해 필요한 능력입니다. 의식주를 기본으로, 하고 싶은 것, 필요한 것 등을 해나가기 위해 기본이 되는 몸, 마음, 생각의 능력을 익히는 것은 현재의 자기 삶을 이끌어가기 위해 필요한 일이자, 자신의 삶을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도록 도전하는데 용기를 줍니다. 자치력이 부족해 자신감이 없는 경우에는 힘든 문제에 직면했을 때 스스로 궁리하고 노력하며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보다는 포기하고 주저하는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주인의식

하고자 하는 배움, 일을 할 때 누구나 주도성을 쉽게 발휘합니다. 그러나 자기 삶의 대부분은 힘들지만 필요한 일, 함께 살기위해 요구받는 일 등을 해나가는데 에너지를 쓰면 살아가게 됩니다. 그럴 때의 일과 배움을 맞이하는 나의 태도는 삶의 주도성과 연관됩니다. 청소년 시기의 아이들에게 배움은 언제나 하고 싶고 즐거운 도전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직 스스로도 확인하지 못한 많은 잠재력은 다양한 도전을 통해 드러나게 됩니다. 어떤 일에서나, 자신의 일과 선택으로 받아들이며 적극적이고 책임감 있게 해냈을 때에야 비로소 온전한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 수 있게 됩니다.

세월호와 탈핵 캠페인, 밴드 버스킹, 힘든 일감들을 처리하는 아이들은 이 모든 일들이 자신이 선택한 일이고 그래서 자신의 일이라고 받아들이며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합니다. 그래서 자기 문제를 넘어서, 주변에서의 일, 세상의 일에도 주인의식을 가지고 도전하며 더 큰 성장을 합니다.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한 싸움

청소년 시기의 아이들은 특히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기 위한 치열한 싸움을 시작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도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기 위해서도 학교에서는 교사, 집에서는 부모와 치열한 싸움을 합니다. 또래와 스스로를 비교하며 좌절하기도 하고 더 잘하려고 애쓰면서 내적 싸움을 하기도 합니다,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하며 막막해하기도 하고, 용기 내어 도전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치열한 싸움을 합니다.

 

삶의 온전한 주인 되기, 제주학사

볍씨학교의 9학년은 독립을 위한 1년의 시간을 제주학사에서 가집니다. 부모님과 떨어져 자신에게 필요한 모든 일들을 스스로 하는 과정입니다. 새벽에 알람을 맞춰 일어나는 것부터,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밥하고, 매일 아침 달리기로 건강하게 시작합니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수천 평의 밭일을 친구들과 합니다. 함께 먹는 음식을 직접 키우기도 하고, 열심히 농사를 지어 나온 수확물을 팔아 생활과 졸업여행에 필요한 자금을 모읍니다. 지금 제주학사에서 아이들이 생활하고 있는 집들은 모두 아이들이 직접 지은 집입니다. 자신의 몸무게와 비슷한 무게의 시멘트며 큰 돌들을 번쩍 번쩍 나르는 아이들의 일하는 모습은 뜨겁고 진지합니다. 늦은 밤이면 일을 마무리하고, 함께 책을 읽고 나누기도 하고, 자신에게 필요한 공부는 시간을 쪼개면서 하기도 합니다. 하루의 마무리는 108배 절로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생활나눔을 하면서 하루를 진지하게 돌아보며 마무리 합니다. 제주의 시민사화, 아이들이 사는 마을의 어른들과 함께하면서 다양한 세상의 이슈에도 참여합니다. 세상에 나가서 잘 살 수 있을지를 확인하고 싶은 아이들은 식당, 밭일, 건축현장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하루가 너무 바쁘고, 일 년이 꽉 차 어느덧 지나갑니다. 일 년간의 교육과정은 아이들과 함께하는 교사들이 매년 새롭게 만들어갑니다.

아이들은 제주학사 과정을 힘겹게 선택하고는 합니다. 그 일 년이 얼마나 치열한지 선배들의 이야기를 통해 들었으니까요. 하지만 제주학사 과정이 힘들지만 자신을 성장시킨다는 것을 알기에 그 과정을 선택합니다. 그래서 힘들지만 열심히 자신의 힘의 크기를 키워갑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스스로 해나가는 것, 그것은 자신이 더 이상 누군가에게 의지해야만 살 수 있는 어린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확인해가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선택하고 책임지는 삶을 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지만, 자신에게는 도전할 힘이 있으며 결국 자신이 삶의 주인이라는 것을 확신해갑니다.

 

 

볍씨는 아이들이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 능력을 키우고, 한계를 넘고 성장하기 위한 다양한 도전을 하고, 자신이 가치 있다고 믿는 방향으로 세상을 살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길 바랍니다.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고자 치열하게 노력하는 아이들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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