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정을 푸는 고리 - 일
작성자 : 윤재향 | 등록일 : 2021-08-23 14:30:07 | 조회수 370

땀 흘리며 일하는 볍씨

 

볍씨에서는 많은 일을 함께 합니다. 매일 아침마다 쌀을 씻고 밥을 준비하는 밥지기, 마실 물을 떠오는 물지기, 컵을 씻는 설거지 지기가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지기를 끝낸 몇몇 아이들은 밭에 작물을 돌보러 갑니다. 일상에서의 지기와 밭일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드는 일도 합니다. 나무와 망치로 직조틀을 만들고 우리가 놀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고, 실과 바늘로 수저집과 옷가방을 만들었습니다. 흙과 벽돌로 가마솥 화덕과 오븐화덕도 만들었지요. 손끝으로 만들어내는 일부터 온 몸을 써서 만드는 일까지 다양한 일을 함께 합니다.

 

볍씨는 몸과 마음, 생각이 골고루 길러지는 것이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기본 그릇이 되는 몸, 모든 것들과 교감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슬기롭고 지혜로운 생각을 키우도록 애쓰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를 모두 쓰는 것이 바로 일입니다. “이거 어려워 보이는데?” 힘들고 어려워 보이는 일을 마주한 순간 하고자 하는 의지를 더욱 내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난관에 부딪힙니다. “저 나무를 맞대서 고정하려면 어떻게 해야하지?” 나무를 붙잡고 열심히 머리를 굴려 궁리를 시작합니다. 끌질을 할지, 한다면 어떤 모양으로 할지, 못질은 어느 방향으로 해야 튼튼할지 나무와 씨름합니다. 열심히 고민한 끝에 끌질과 망치질을 시작합니다. 내가 머릿속에 그렸던 모습이 내 몸을 움직여 눈 앞에 완성되는 것을 봅니다. 해보려고 하는 마음, 어떻게 해야 일이 잘 진행될까 생각하고, 마음먹고 생각한 것을 몸을 직접 움직여서 만들어내는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결과물을 완성해냈을 때 아이들은 큰 성취를 가져갑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아이들이 왜 일을 해요?, 많고 많은 방식 중에 왜 일이에요?” 돌아보면 우리의 일상은 모두 일로 둘러쌓여 있습니다. 먹을 음식을 만들고, 치우고, 내 잠자리를 정리하고, 내가 쓸 물건들을 고민하고 만들어내는 모든 것이 일입니다. 내가 필요한 일들을 찾고 그것을 해결해 나가는 모든 과정이 일 안에 녹여져있습니다. 일은 필요에 의해 움직여졌을 때 더 큰 동기를 주고, 열심히 일한 결과물이 모두의 눈에 확연하게 드러나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는 동시에 스스로 자신의 힘을 명확하게 확인하는 장치가 됩니다. 일을 통해 내가 가진 힘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아이들은 더 큰 과업에 도전하는 마음과 해낼 수 있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깁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굳이 힘들게 일을 해야 해? 그냥 편하게 살면 안 되나?” 아이들은 힘든 상황을 겪어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은 일상에서 마주치는 많은 것들을 쉽게 포기해버립니다. “아, 힘드네, 그냥 그만둬야겠다. 다른 사람이 알아서 하겠지 뭐.” 어떻게 해결할지 궁리하기보다 어떻게 벗어날지 고민합니다. 힘듦과 허덕거림 안에서 나의 한계를 마주하고 궁리 끝에 어려움을 넘어본 아이들은 더 큰 한계에 도전할 수 있는 힘을 가집니다. 한계를 마주할 수 있는 힘든 상황을 위해서는 그만큼 큰 일거리가 필요합니다. 혼자서 번쩍 나무를 들어올리기보다 대여섯이 달라붙어 낑낑대며 나무를 들어올리고, 손으로 황토반죽을 하기보다 여럿이서 발로 밟으며 반죽을 하는 큰일을 할 때 아이들은 더 많은 기운을 쏟아 붓습니다. 큰일을 하다보면 우여곡절을 겪기도 합니다. 예상과 다르게 계획이 틀어지기도 하고 일이 많아져 완성되는 시기가 늦춰지기도 하지만 애씀이 더해졌을 때 스스로 가지는 만족감과 뿌듯함은 더욱 커집니다.

 

청소년 과정의 마지막 제주학사에서는 일이 경험으로만 그치지 않습니다. 배움과 일을 일상 안에서 전면적으로 마주합니다. 졸업을 앞둔 이 시기의 아이들은 내가 세상에 나가서 한 주체로 설 수 있을까, 한 사람의 몫을 하며 잘 살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이런 고민들 속에서 자기 확신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바로 일입니다. 넓은 밭을 일구고, 돌집을 지으며 큰일과 한계를 넘어본 아이들은 능력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더 큰 세상을 마주할 자신감을 가집니다.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앞으로 무엇을 선택하든 힘든 길을 가더라도 헤쳐 나갈 수 있는 믿음을 가지게 해주는 일은 중요한 배움의 과정입니다.

 

한 학기, 길면 1년의 긴 호흡으로 하나의 큰 일감을 해내는 아이들의 땀방울에 한계에 도전하는 야생성과 내가 맡은 일을 책임지고 해나가는 주도성이 함께 맺혀있음을 믿고 오늘도 볍씨는 열심히 일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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