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일, 볍씨학교 윗학교 이별식 <고마워, 덕분에 잘 자랐어>에서 졸업생들이 읽은 글입니다.
작성자 : 성현우 | 등록일 : 2016-07-04 15:22:36 | 조회수 6807

  졸업생들에게 볍씨 공사 소식은 한없이 아쉽습니다. 그래서 몇몇은 이별식을 위해 여러 가지를 준비했고, 미처 오지 못하는 사람은 학교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라는 부탁을 하기도 했습니다. 볍씨를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그 공간들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아쉬운 것 같습니다. 볍씨로 놀러 가면 맞이해주는 선생님과 동생들이 있듯이 이 컨테이너와 흙집들도 졸업한 우리를 항상 맞이해주었습니다. 그 덕에 우리 학교로 돌아왔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곳은 우리가, 볍씨가족들이 십여년간 놀고 배우며 성장했던 수많은 기억들이 담긴 공간입니다.
 

  누군가는 어떤 공간에 대해 이 정도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의아할 것입니다. 하지만 한 공간이 10년이상 자리를 지키고 있고, 그 시간동안 그 공간을 함께 만들고, 가꾸고, 지켜온 사람들이 있다면 이곳은 단순히 공간으로서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학교에 대한 그리고 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 곳이 됩니다. 그리고 그 시간과 이야기들이 많은이들에게 고향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었지요.
사실 볍씨 공간은 여러모로 불편함이 많은 학교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있는 것도 별로 없고, 부족함이 많은 학교였을지도 모릅니다. 배움이라는 것이 꼭 불편함을 통해서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그곳에서 사는 법을 배우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힘들을 얻었습니다.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방식의 삶의 풍요로움을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볍씨는 검은 비닐이 덮여진 건물 한 채였습니다. 그 공간이 많은 분들의 손길과 정성으로 지금의 모습까지 조금씩 변화해왔습니다. 이 공간에서 우리가 자라고 잘 지낼 수 있게 해주신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싶습니다.
매학기 공사가 필요할 때마다 시간을 내고 힘을 모아 좀 더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주신 이모, 삼촌들 정말 고맙습니다. 공사를 할 때마다 함께 도와주신 오선생님, 감사합니다. 지내면서 힘들었을텐데 티내지않고, 이 공간에서 여러 배움을 할 수 있게 해주신 볍씨 선생님들께도 감사합니다. 그리고 윗학교에서 놀고 배웠던 볍씨 학생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비록 지내면서 불평불만은 많고 잘 정리하고 치우지는 않았지만, 즐겁게 지낸 우리로 인해 이곳이 예쁘고 소중한 곳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학생, 선생님, 부모님 모두 애정을 가지고 이곳을 함께 꾸려왔기에 다시 한 번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볍씨를 볍씨답게 해준 나무들과 마당, 컨테이너와 흙집에게 감사합니다. 큰 사고 없이 지내게 해주고, 소중한 기억과 배움을 갖게 해준 볍씨 윗학교 이 공간에게 정말 감사합니다. 수고많았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자라나는 볍씨 한 알과도 같은 성장을 해온 건 비단 우리만이 아니었습니다. 발길이 닫지 않던 작은 카페에서 백 명이 넘는 어린이들의 삶의 공간으로 변화한 윗학교는 수많은 볍씨 가족들이 일상으로, 공사로 부지런히 정성을 다해 일궈온 볍씨 밭(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정말 많이 낡고 허름해졌지요. 황금빛 볍씨들을 마음에 간직하고 십 년에 걸친 긴 농사를 갈무리 할 때가 왔네요.
새로 지어지는 공간에서도 겨울에 차갑게 굳어진 손가락을 엉덩이와 장판 사이에 녹여가며 하는 필기가 계속되면 좋겠습니다. 시시각각 우리를 반기던 교실 벽 검은 곰팡이와 커다란 회색 쥐는 그 자손에 자손까지 교실에서 함께 살기를 기원합니다. 수돗가는 오랜 전통에 걸맞게 한 곳에 만들어 매일같이 물지기들이 설거지 물통을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상이면 정말 더는 바랄 것이 없지요! 하하.
오늘 이후로는 정말 해보지 못 한 큰 공사가 시작될 테지요? 볍씨학교를 많은 이들의 방관이 아닌 관심 속에서 가꾸어나가길 기도하고 응원하겠습니다. 변화의 문턱에서 부모님들과 볍씨 학생들이 앞으로 어떠한 학교를 만들어갈지, 어떠한 삶을 의식하고 실천할지 더욱 상상하고 공부해주길 부탁하고 싶습니다. 적극적으로 삶을 고민하는 선생님과 학생 그리고 ‘부모님’들이 있다면, 문화도 일상도 분위기도 많은 것이 변하더라도 진심어린 마음이 살아있을 볍씨를 우리 수료생과 졸업생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지지하려 합니다.

 

  볍씨가족, 친구들, 선생님들... 그리고 땅과 자연에 깊이 감사하며 그간의 세월을 옥길동 정령들이 앞으로도 짓게 될 새로운 터 역시 잘 지켜줄 것을 바래봅니다.

 

2001년부터 시작된 윗학교 농사 갈무리에 앞서

2016년 7월 2일 볍씨학교 졸업, 수료생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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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영 2016-07-04 오후 3:55:33

    멋지다~~ 멋져~ 함께 해줘서 고맙고 잘 자라줘서 고맙고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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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동환 2016-07-05 오후 6:40:26

    졸업생 너희들....
    10년쯤 흐르면  애들 하나씩 데리고 10년전 포즈로 사진 찍겠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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