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9월
작성자 : 박성일 | 등록일 : 2015-09-15 13:58:36 | 최종수정일 : 2015-12-07 22:11:20 | 조회수 36878

다른 학교 선생님이 저희 제주학사를 어떻게 바라보셨는지 아래 글에 (아쉽지만) 짧고 강렬하게 서술되 있습니다.

그리고 고등과정과 청년, 사회로 진출하는 대안교육 1세대들에 대해 사례와 의견을 중심으로 읽어 볼 만하기도 합니다.

방향을 찾기 위한 고민과 갈등이 어떻게 발전해 가는지를 보고, 우리 아이들 미래를 그려 보기 상당히 좋습니다.

저희 볍씨도 졸업생들과 선배 학부모를 이제 컨설턴트로 잘 활용해야겠지요.    

 

1학기는 자연반 아이들과 선생님 생활을 들여다 보면서 정말 긴장했습니다. 

'스릴 넘친다.'는 표현이 적절 할가요? 

아이들 모두가 폭풍 성장하는 모습 보면서 제가 희망해 오던 '볍씨대안교육이 바로 이런 것이었구나.'를 비로소 확인하고 있습니다. 왜 볍씨와 대안교육을 선택했는지 확실히 정리해 주는 9학년 1년인 것 같습니다.

 

나무반 친구들이 가을들살이를 9월말에 제주도로 온다고 아이가 편지에 적었더군요.  

볍씨에서 성장해온 아이들은 방향에 상관없이 스스로 좋은 선택을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렇게 성장하는 친구, 선후배들은 볍씨 공동체가 되어 정말 질긴 인연을 미래에도 이어갈 것 같습니다.

고향친구가 평생친구이듯.

 

아래 글 읽어보면 잘 알 수 있어요.

우리 졸업생 청년들이 그래요.

 

볍씨 이후 진로를 서로 질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2,3년 늦으면 또 어떻고...'도 좋은 답변인 거 같고요,

'독/립/('자립'인가요?)'을 가슴으로 이해하고 진짜로 준비 시작하는 우리 아이들 보시면 엄청 좋아요^^(내 품에서 떠나는 것 같아 싫기도 하고요~)   

 

필요하시면 커피 마시면서 대화해 드릴께요~

 

/자연반 아빠 박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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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교육과 진로] 뒷모습 보며 사는 거지요_양희창 선생님 지인지기

2015.09.03. 11:09

http://transungmi.blog.me/220470326124

2015년 9월 2일 성미산학교

  

대학을 나오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다 뻥이거든요.

 

반갑습니다. 5년 전에 이 자리에서 이야기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95년도부터 대안교육 판이라는 데서 준비를 하다가 97년 간디학교 세울 때 역사 선생님으로 갔다가 2000년부터 교장. 12년 교장을 했죠. 그만두고 귀농귀촌한 가정이 30가구. 같이 놀자고 해서 마을에서 마을 일을 좀 하고 있습니다. 교육문화센터. 몇 년 전부터 청소년이 졸업을 하니까 청년들에게 관심을 안 가질 수 없습니다. 4년째 중국에 아시아평화학교라고 졸업한 애들 데리고 가서 1년 과정으로 평화수업도 하고 프로젝트도 하고. 2년 전부터 서울에서 아시아인들이 같이 살아가는 공동체를 꿈꾸다가 최근에 제주도로 옮겼습니다. 지구마을평화센터라고. 내년에 정식 개교하고 올해는 모여서 일하는 걸로. 청년들 학교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대안대학이라고 하는데 꼭 그렇진 않고요. 맥락이 비슷해서 그런 말씀을 드리는데.

학교에서 떠나면서 저를 객관화시켜 봤어요. 오늘 오면서 걱정이 됐던 것은 제천간디학교가 요즘 굉장히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내 코가 석자인데 여기 와서 무슨 이야길 하지? 10년 차가 넘어가면 비슷한 고민과 비슷한 문제들을 갖고 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경미 쌤이 한 번 오라고 할 때 그런 이야기 같이 하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왔습니다.

 

처음에 간디학교가 산청에서 시작할 땐 좋은 학교를 꿈꿨던 것 같아요. 97년 시작할 때는 안 때리는 학교, 교사와 애들이 친한 학교, 개겨도 봐주는 학교, 부적응이라고 하는 아이들이 왔을 때 그 아이들도 꿈을 갖게 해주는 학교. 그땐 그게 먹혀 가지고. 첫해 졸업생들이 지금 35, 6살 되는데 그 아이들이 제일 정이 가고 지금도 교제를 하고 있죠. 좀 하다가 교육운동을 해야 하지 않느냐. 사회참여라든지 여기도 ‘핵핵거리지 마’ 해놨지만 이라크파병반대운동이라든지 여러 가지 사회 참여를 하면서 어떻게 하면 이 땅의 교육을 좋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 부작용도 상당히. 맨날 청소년 데리고 광화문 가서 춤이나 추고 앉아 있고. 그럴 수가 있느냐. 우리가 생각하는 사회참여의 수준과 아이들이 생각하는 수준은 다른 것이구나. 맞춰야 하는 구나. 어른들이 너무 끌고 가면 안 되는구나. 그러면서 프로젝트 수업이라든지 학교의 내실화 꿈을 꿨죠. 처음엔 고등과정까지 만들면서 6년 통합과정으로 끌고 갔던 거예요.

대학을 나오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다 뻥이거든요. 애들도 관심도 별로 없어요. 수업도 선택수업만 했다가 필수를 집어넣었다가 프로젝트를 강화했다가 5학년(고2) 때 <평화>, 6학년(고3) 때 <생명>으로 1년 끌고 갑니다. 6학년 땐 1학기 인턴십을 합니다. 2학기엔 자치 인문학 학교를 합니다. 그 과정을 통해서 어떻게 하면 자기 진로를 스스로 정할 수 있을지, 대학을 가고 안 가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원하고 잘하는 게 뭔지 깨닫는 데 중점을 두고 교육과정을 만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노력하는 과정이었지 그게 답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합니다.

 

최근 (간디)학교가 생긴 후 처음으로 불신이 생겼습니다. 아이들이, 부모들이 교사를 믿지 않습니다. 우리 학교의 큰 문제입니다. 그게 없이는 진로 문제를 이야기할 수 없어요. 교사의 삶에 대해서 존경하고 공감하고 그 삶을, 저 사람이 하는 얘기와 행동이 똑같다는 것을 애들이 믿지 않으면 진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굉장히 많은 교사들이 고민을 하고 있고 부모들이 문제의식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마을에 있는 부모들은 너무 사정을 잘 알잖아요. 교사들보다 연차도 높고, 사회경험도 있고 더 성숙하신 분들. 염려하시면서도 어떻게 이렇게 처리를 못하냐는 반감들이 생겨나고 있어서 ‘아이들의 진로의 문제를 학교에 다 맡길 수가 없겠구나. 우리가 알아서 해야지.’ 라고 생각하는 부모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긍정적인 것은 그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너희들이 내 문제를 어떻게 아냐. 내가 해야지.’ 하고 잘 해결하는 편입니다.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스스로 갖는데 오히려 어른들이 문제. 아이들을 바라보는 불안한 시선이라든지 학교에 대해 신뢰하지 못하는 눈이라든지 이런 것들로 인해 우리도 굉장히 힘듭니다. 신뢰를 상실한 문제는 해결해 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굉장한 위기의식을 갖고 있어서 올 가을이나 세팅에 들어갈 것 같고 제가 학교를 떠난 지 3년이 넘었지만 이사의 한 사람으로 역할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아무튼 진로는 다양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는데 왜 그럼 부모들이 대안학교에 보냈냐는 거예요.

주민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보지 못하던 부분을 보게 돼요. 부모가 교사를 보는 눈은 두 가지. 학교 철학이 있잖아요. 그렇게 믿고 실천하고 있느냐, 철학에 대해 관심이 있느냐, 그렇게 사느냐에 대해 보시는 것 같고요. 그래도 학교니까, 애들 좀 잘 가르쳐주라. 애들도 그런 이야기를 해요. 중학교 때는 잘 놀아주는 교사를 좋아해요. 고등부 정도 올라가면 “저 선생님은 성질은 더러워도 실력은 있어요.” 이런 이야기를 해요. 자기 진로에 대해 지도해 줄 만한 능력이 있다고 보는 거죠. 둘 중에 하나라도 가지고 있어야 하는구나. 철학을 견지하든지 실력이 있든지. 

모든 교사가 철학도, 실력도 있는 공동체는 없습니다. 한두 가지는 겸비하면서 조화를 이루는 거죠. 그런 부분들이 대안학교 전반적으로 굉장히 떨어지고 있습니다. 젊은 교사에게 문제가 있다는 건 아닙니다. 이전에는 교육의 환경과 밖으로 드러나는 외부의 적들과 싸우면서 자기를 정화시켰다면 지금은 안에서부터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할 수 없는. 매너리즘도 있고 교사들도 관성화되어 가고 부모들도 자기 아이만 눈에 들어온다든지. 그런 모습들이 우리 대안교육 판에서도 보인다는 거죠.

진로와 관련해서는 졸업을 하고 나서 대학을 가든지 생각을 하라고 한지 10년이 넘었습니다. 학교 설명회를 하면 막바로 “대학을 갈 수 있는 방식은 없습니다. 천재이거나 따로 공부를 하지 않는 이상. 두고 보십시오. 절대로 못 갑니다. 이때까지 간 아이가 한 명도 없습니다.” 라고 하면 30분 듣다 가십니다. 차가 열 몇 대가 빠져나갑니다. 그런 일을 10년 했죠. 지금은 보통 아이들이 2년 차나 3년 후에 대학에 가는 편입니다. 100년까지 살아야 하는데 2, 3년 늦으면 어떠냐고 아이들은 느긋하게 생각합니다. 졸업생 중 50% 정도는 대학에 가고 50%는 가지 않습니다. 문화 활동, 대학로 연극, 밴드. 20대가 50대가 될 때까지 정규직을 못 가질 확률이 50%잖아요. 아예 정규직 안 하겠다고 살아가는 친구들도 있어요.

아무튼 진로는 다양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는데 왜 그럼 부모들이 대안학교에 보냈냐는 거예요. 일반학교와 좀 다른 바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무언의 약속. 교육 내용적으로는 기획력과 배려 능력이었어요. 문제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갖추는 것,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 연대하는 능력을 키우는 걸 녹여내려 했던 것 같고. 더 궁극적으로 이야기하면 대안학교에서는 교사나 아이들이나 부모들이나 똑같이 어느 수준에선 깨달음을 위해 가는 거구나, 깨달음을 위한 공부구나. 내가 지금 행복한지, 아이들을 사랑하고 있는지. 깨달음으로 가는 교육을 하고 싶어서 이렇게 만들어놨구나. 그런데 그 부분에 있어서 과연 그렇게 되었는지는 12년 동안 다닌 친구들한테 물어봐야겠죠.

오히려 애들은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측면에서 깨닫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 관계에 대해서 깨닫고 생각하면서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면이 있는데 교사도 뒤처지고 부모는 너무 찌들리고. 그래서 그 아이들이 가지는 새로운 꿈들에 대해서 봐줄 수 있는 어떤 인내나 희망적인 눈들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합니다. 깨달음이라는 것이 탐진치[貪瞋癡]에서 벗어나는 것이라 생각해요. 내가 얼마나 쓸데없이 많은 욕심을 가졌는지, 오늘 왜 나는 또 화를 내고 있지? 내가 정말 어리석구나, 무지하면서 남을 판단하고 있구나. 탐진치[貪瞋癡]에서 벗어나는 깨달음이 대안학교에서 나타나줘야 어떻게 살고 싶은지 용기도, 지혜도 좀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추상적으로 이야기를 하지만 제 딴에는 굉장히 고민을 한 내용입니다.(웃음) 2, 30대 졸업생들은 이런 이야기가 통하니까. 청년들이 내 친구니까. 가난하게 살지만 넉넉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자연을 살리면서 살 수 있는 방식은 없을까. 운동을 하면서 살 수 있는 방식은 없을까.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 살 수 있는 방식은 없을까. 자기 마을이나 지역에서 고민하는 아이들이 청년으로 자라고 있다는 점에선 희망적이긴 희망적입니다. 희망과 절망이 제 속에 다 있는 거죠.

 

고생을 직싸게 시키면 저가 알아서 잘 살아갈 겁니다.

지금 애들은 헬조선이라고 하잖아요. 우리 사는 이 땅을 지옥이라고 그러잖아요. 청년들끼리 이민 계를 만들고 떠날 생각을 하고 있고 사회를 보는 시각은 굉장히 비판적이고 냉소적. 실제로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를 주지도 않고. 이런 세상 속에서 대안학교 청년들은 직업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친구들 일자리도 찾아주고 다른 방식의 삶을 생각해 볼 수 있는 틀들을 시도해봤기 때문에 그런 방식으로 살 수 있는 파워를 가지고 연대를 갖고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조금만 모을 수 있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진로라는 말을 하면서 다시 자본주의 속으로 들어가는 거죠. 여기에서 배운 건 탈(脫) 자본주의적이고 양극화나 자연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면 안 된다고 이야기를 하며 살아왔는데 위로 갈수록 개인이 극복하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되어 버리는.

 

초등학교만 운영한다고 해도 대안학교는 진로를 고민해야 하고, 그것은 이 아이들의 삶의 가치관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10명 중 1, 2명이라도 운동을 할 수 있으면, 혁명을 할 수 있으면 하는 꿈을 갖고 있습니다. 정치든 무엇이든 어떤 분야이든. 대안적인 삶이 가능하다고. 음악이든 미술이든 무엇이든 대안적인 직업들을 찾아내고 진로와 기업들을 만들어내는 방식들을 기대하는 거죠.

 

광명볍씨학교 중학교 3학년 1년 과정을 제주도에서 보내요. 몇 주 전 거기에서 하루 자고 있으면서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고백을 했습니다. 느그 학교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학교다. 교사 딸랑 2명, 학생 9명. 아침에 불을 때서 제게 밥을 해주더라고요. 현미밥을. 아침에 공부하고 오후 늦게까지 일을 합니다. 어떤 애들은 나가서 농사일을 하고 돈을 벌어 와요. 저녁에 또 공부를 해요. 자기들끼리. 저녁 7시부터 시작해서 11시까지 합니다. 그리고 바로 자는 게 아니에요. 또 요가를 하고 108배를 하고. 매일 하고 아침에 뜁니다. 애들이 완전 촌놈에다가 산(山)사나이가 되어 있어요. 어떤 것이든 다 할 수 있는 내공이 생기더라고요. 고생하는 학교, 주경야독. 그만한 학교를 본 적이 없습니다. 생태 이야기하고 도심에서도 거창한 프로그램 짤 수 있지만 거기에는 프로그램도 없어요. 학교라는 게 삶.

 

제가 느낀 게 많아서 학교라는 태(態)가 뭘까? 6년차를 만들어놓으니까. 여긴(성미산학교) 12년차. 6년차를 만들어놓아도 교사가 20명이 넘죠, 애들이 120명이 넘죠, 부모들이 있죠. 조직이 됩니다. 공동체, 사랑, 소통 조직적인 풀이를 해야 합니다. 다. 선생님들조차 자기 하고 싶은 이야기 못하고 파워 게임해야 하고 부모님들도 마찬가지. 지금 정도는 한 번쯤 무너뜨려야 하는 거 아니냐. 학년제도 무너뜨리고. 다 12년 필요하냐. 광명볍씨 보니까 2년이면 충분하겠더라고요. 중고 합쳐서 4년 정도. 그만큼 저 혼자 공부하고 일하게 하게 하면 진로 찾기 충분하겠구나. 

제도적으로 영원하고 좋은 건 없다. 그 사람들, 그 구성원들이 살아가는 살림살이, 형편에 맞게 바꿀 수 있는 역동성이 있어야 한다. 어린이 학교 5년, 청소년 학교 5년이면 충분합니다. 그 다음 2년은 고생을 직싸게 시키면 저가 알아서 잘 살아갈 겁니다. 고생시키는 학교를 좀 했으면 좋겠다. 그럼 진로 문제는 저 스스로 깨달아서 잘 해 나갈 것이다.

 

          뒷모습 보면서 사는 거지요. 그렇게 살고 있구나.

 

           Q1 :   지금 20대 중반이 된 졸업생들이 대안학교 나와서 뭐가 좋고 나빴다. 학교 경험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나요?

 

희창 : 처음 나간 애들은 간디 출신이라는 걸 굉장히 쪽팔려 했습니다. 그래서 자기네들끼리 똘똘 뭉쳐서 한신대, 성공회대 다니는 게 몇 년 있었죠. 지금 20대 애들은 프라이드가 꽤 있습니다. 어디서 나오느냐. 일반학교와 다른, 선생님들이 잘 가르쳤다, 이런 건 아닌 것 같고요.(좌중 웃음) 깊은 동료애 때문인 것 같아요. 친구들끼리. 우린 일반학교 애들처럼 그렇게 안 했다. 정말 가족처럼 지냈다든지. 간디가 15년 정도 됐는데 엄청나게 많은 애들이 연애를 했겠죠. 그런데 한 명도 결혼까지 성공한 예가 없습니다. 지난주에도 주례를 보는데 간디학교 애들끼리 결혼하면 냉장고를 사 주겠다, 해외여행 보내주겠다. 왜 깨지냐고 하니까 “가족끼리 어떻게 결혼을 하냐”고.(좌중 웃음) 식상하다고. 너무 잘 안다는 것.

       

 

          결혼식 때 보면 간디 출신 애들이 다 옵니다. 4, 50명. 우리는 여기에서 가족처럼 살았어. 지지고 볶고 학교 나갈 생각도 많이 했지만 그래도 여기에서 거창한 생각을 좀 하지 않았느냐. 사랑, 평화, 공동체. 뭔지 모르지만 일반학교에서 못 배운 걸 배운 것 같아. 긍지는 있는 것 같고요. 대학을 가고 안 가고를 떠나서 저거들끼리 차별을 하지 않습니다. 돈을 많이 버는 애들도 있어요. 이상하게.(좌중 웃음) 지지리 궁상 떨고 앉아서 아직도 고민하는 애들도 있지만 자기네들끼리는 잘 살펴준다고 하나요. 형제처럼. 그런 것들 때문에 6, 12년 겪으면 다 알잖아요. 너무너무 잘 아니까. 그건 너무나 소중한 공동체적 경험.

 

          (간디의 상황을 말씀하시며)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에요. 방식에서 다 생각이 달라요. 다르지만 지난한 과정과 회의 끝에 결론에 이르렀을 때 믿어주는 거죠. 비상대책위를 꾸리든 뭘 하든. 그게 지금 굉장히 상실입니다. 굉장히 슬퍼요. 이 신뢰관계가 깨지면 대안학교를 할 이유가 있나. 일시적이라고 생각하고 잘 헤쳐 나갈 것이라 생각하지만 내부적으로 굉장히 내공이 떨어졌구나. 십여 년 지나면서 일종의 리노베이션할 때가 됐구나. 우리들 깨달음의 문제라고 생각. 부모들도. 왜 애를 보냈지? 뭘 기대했지? 교사들 입장에서도 뭘 가르치고 있는 거지?

 

          방학 때 애들이 하도 찾아오니까 숨어 있어요. 꼭 질문하는 게 6년 동안 제일 기억에 남는 게 뭐냐? 100명 넘는데 어떤 선생님의 가르침이 좋았다는 게 한 명도 없어요.(좌중 웃음) 너무 싫었다, 지겨웠다는 있어요. 누가 잘 가르쳤다, 그런 건 없습니다. 뒷모습 보면서 사는 거지요. 그렇게 살고 있구나. 생태 이야기하면서 틈만 나면 텃밭 가꾸고 있구나. 나도 그렇게 살아볼까. 그런 애들이 자랐기 때문에 농사꾼이 2명 생겨난 거예요. 그런 거 아니고는 진로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너 부모처럼 살래? 라고 물어보면 “우리 부모요? 맨날 찡그리고 있는데요. 맨날 밥상머리 앉아서 돈 얘기 하는데요.” 그 부모가 의사이고 그런데도 그렇게 안 살고 싶다는 거죠. 진로에 있어선 결국 사람이다. 롤모델이 있어야 한다. 초창기 애들은 대안학교 교사 절대 안 한다. 월급 적지, 맨날 회의하지, 사생활 보장 안 되지. 최근 졸업생들이 사감도 해요. 더 문제에요. 맨날 술 먹고.(좌중 웃음) 그래도 좋다. 졸업생들이 학교를 점령하는 날, 접수하는 날 우리는 굉장히 행복해질 것이라는 상상을 합니다. 지금은 과도기.

 

 

           2, 3년 후에 대학에 가면 뭐 어때, 하는 느긋함이 존재해야 한다.

 

           Q2 :   아이가 간디학교캠프 다녀왔는데 굉장히 좋다고. 철학을 공유하면서 부모가 대안학교를 선택해서 왔는데 아이는 어느 나이가 되면 자기 삶에 대해 고민할 때 철학만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거죠. 저희 집도 고민이 많은데요. 제천간디에서도 들어왔는데 다시 일반학교로 전학을 가는 경우는 몇 %나.

 

희창 : 한 학년에 한두 명은 꼭 있었습니다. 20명 중등 들어와서 고등 졸업할 때는 16명? 꼭 일반학교를 가는 건 아니고요 혼자 검정고시를 한다든지 홈스쿨러가 되는 거죠. 일반학교에 간 애는 중앙대학교 음대를 갔는데 일반학교에 가서 중앙대 간 거 아니냐고 엄청 자랑을 하면서 다녀요. 그런데 지금은 후회하면서. 다른 애들이 왕따를 시키거든요.(좌중 웃음)

 

          대학에 대한 염려 때문에 일반학교에 가는 아이가 있을 수 있지만 정말 바보짓이에요다. 검정고시를 보고 홈스쿨러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건 마치 7부 능선까지 갔다가 이 길이 아닌가벼, 하고 다시 가는 것과 똑같습니다. 뒤쳐질 수밖에 없어요. 가치관을 버려야 하기 때문. 대안학교에 보낸다는 것은 가치관에 대한 승복. 가치관에 대한 합의가 있었는데 그걸 깨는 거죠. 좋은 대학 보내겠다고 학교 나간 부모치고 후회 안 하는 부모 없습니다. 다 후회합니다. 한 아이는 부모님이 회개를 하고 돌아와서 늘 오세요. 괜히 거창고등학교 보냈다고. 결국 걔도 한신대 철학과 갔어요. 후회하세요. 같이 자랐으면 좋았을 텐데.

 

       

          단순한 문제는 아니구나. 가치관이라는 것에 입각해서 보내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아이가 되길 바라는 부모의 고백이기 때문에 정말 신중하셔야 합니다. 2, 3년 후에 대학에 가면 뭐 어때, 하는 느긋함이 존재해야 합니다. 또 안 가면 어때. 제 새끼도 안 갔어요. 한 놈은 갔는데 한 놈은 흙집 3년 짓고 소목 2년 하고 그것도 지겹다고 놀고 있어요. 어쩌겠어요?(웃음) 두는 거죠. 삶에 대해서 존중하고 자기 길을 잘 헤치고 나갈 것이라 믿고 바라봐 주는 거죠. 

          한국에서 청소년들과 이야기해 보면 정말 목적이 돈이거든요. 돈을 많이 벌려면 사기를 치거나 남의 것을 뺏거나 부모를 잘 만나는 것 외에 방법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교육을 하고 있는 거잖아요. 이런 가치관에 대한 깨달음. 내는 지혜? 그럴 수 있는 확률은 없습니다. 내 아이에 대해 가난하더라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은 없을까. 좋은 이웃을 만나서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데 관심을 갖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그래서 자꾸 이야기하는 것. 우리 아이들이 제일 싫어하는 게 ‘공’자입니다. ‘공’동체, ‘공’부, 제일 싫어하는 색이 녹색.(좌중 웃음) 졸업하고 와서는 나무가 너무 좋대.

 

           Q2 :   제가 보기엔 극단적인 선택. 일반학교에 간다고 그 철학이 무너진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 또한 시스템 안에서 답답함을 느끼는 거죠. 흔들리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이야기해 줘야 할지 모르겠고. 부모의 생각을 자꾸 이야기하는 것도 폭력. 중등을 앞둔 입장에서는 그런 것들이 혼란스럽거든요.

 

희창 : 중등 보낼 때까지는 부모들의 생각이 더 큰 것 같아요. 간디에서도 고1 올라갈 때 결단을 하라고 하거든요. 중등 대부분은 부모들이 설득해서 옵니다. 스스로 결정해서 고등과정 가는 애들이 있고 홈스쿨링 하는 애들이 있고. 중학교까지는 초등학교 6학년이니까. 어쩔 수 없이 부모의 역할이 큰 거죠. 애들에게 정말 좋은 걸 주고 있는가 왔다갔다하면서 결정. 고등 올라갈 땐 애들이 결정합니다. 대안학교 3년 다니면 그런 힘은 있어요. 빨리 검정고시 쳐서 대학 가는 게 좋겠다.

 

           그런데 왜 일반학교에 가는 게 어리석다고 하냐면 일반학교에는 우리보다 더 큰 철학이 있어요. 경쟁과 효율. 4, 50대는 그 교실을 꿈도 못 꿉니다. 좀비에요, 좀비. 한 번 가 보세요. 일반학교 선생님들한테 이야기를 들어보십시오. 학원에 가기 위해 사교육을 하는 애들은 숙제하기 바쁘고 못 알아듣는 애들은 자기 바쁘고 중간 애들은 어중간해서 바쁩니다. 우리 학교 하다가 기간제 교사로 나간 샘이 있어요. 고등학교 가 보니까 학교 붕괴, 교실 붕괴라는 이야기는 어렴풋이 듣다가 6개월 생활해보니까 아, 이건 아니구나. 경쟁과 효율 빼곤 아무것도 통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엉터리 같은 학교 다녀도 싹수가 좋은 애들은 그렇게 살아요. 저항하면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그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구조적으로 이건 엄청난 겁니다. 1, 2%외에는 관심도 두지 않는 학교입니다. 그건 확실합니다. 그렇게 들어갔을 때 우리 아이들이 1, 2%에 들어갈 확률은 희박하다는 거죠. 아무리 달리기를 잘해도 50m 먼저 간 아이들을 따라잡을 순 없습니다. 대학에 가는 지식, 스킬을 배우는 거지 학문을 배우는 게 아니잖아요. 그 가치관을 틀릴 수밖에 없습니다. 굉장한 가치관이 양쪽 학교에 다 존재합니다.

 

          제가 간디학교에 있을 때 학생들이 너무 무겁다. 공동체, 남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너무 짜증났다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제가 변했대요. 우리가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요즘은 너무 가벼워져서. 옛날의 제천간디가 아니구나. 운동성을 거의 버렸어요. 애들이 오히려. 가족회의 안건 자체가 스마트폰 쓰면 안 됩니까. 부결되면 또 싸우고. 그 다음 도난, 그 다음 폭력. 사회 이슈를 위해서 뭐, 그런 거 없어요. 그래서 우리 아이가 좋은 대학 가야 한다고 하시면 미리 빼는 게 낫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일반학교 보내는 것도 괜찮아요. 거기에 잘 적응해서 살 수 있는 아이 같으면 그렇게 하시고요. 그런데 지금부터 생각이 있고 대안학교에 대한 희망이 있는 친구들은 좀 다니게 하면 좋은데 애들이 빼내거든요. 고2 때 빼내는 건 참 바보 같은 짓입니다. 중1 때 좀 빼지. 고2 때 빼서 애를 저렇게 힘들게 할까.

 

 

          좀 늦으면 어떻고, 빠르면 어떻냐.

 

           Q3 :   큰 애가 성미산학교를 작년에 졸업했어요. 고등과정에서도 진로의 문제나 이후 문제에 대해 애들과 거의 이야기를 해보지 못했고 학교 선생님들께 모든 것을 맡기고 있었던 것 같아요. 작은 애는 중3인데 조금 더 진로나 고민에 대해 이야기를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천간디는 기숙사 생활이라 부모님과 떨어져 있긴 한데 진로나 고민을 어떤 식으로 만들어 가는지.

 

희창 : 기본으로 꿈공은 안 해야 할 것 같아요. 너 뭐 될래? 애들 속으로 ‘니는? 니는 꿈대로 살았나?’ 꿈은 늘 변할 수밖에 없고 우리 아이들은 평생 6, 7개 직업을 가져야 한대요. 평생직장이란 게 없는 거잖아요. 엄청나게 많은 직업이 생기고 사라지는. 꿈이라는 것을 진로나 직업과 연관시켜 이야기하니까 피곤한 거죠. 성향에 따라 굉장히 늦게 발견하는 아이들도 있어요. 졸업하고 나중에 어떻게 살았으면 좋겠다 깨닫는 아이들도 있고 계속 밴드 생활하다가 지금도 대학로에서 밴드하는 아이들은 중1때부터 그렇게 살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르지 않다는 거지. 좀 늦으면 어떻고, 빠르면 어떻냐는 거지.

 

          진로에 대한 자기 모색을 하는 시간을 주는 제일 큰 시간이 고등학교 3학년 1학기 인턴십. 스스로 멘토도 정하고 지역도 정해서 6개월을 살아야 해요. 음악, 연극 팀에서 가서 6개월 동안 살다 오는 친구도 있고. 그 과정에서 굉장히 많이 깨지죠. 지난 번 졸업생 한 명도 버클리 음대에 가겠대요. 지금은 헬스트레이너강사 하고 있어요. 연극뮤지컬 팀에 가서 6개월 하고 오더니 “평생 음악을 사랑하려면 직업으로 안 갖는 게 낫겠어요.”라고. 네 말이 맞다, 너는 작곡이 안 된다. 노래도 못한다.(좌중 웃음) 음악은 지금도 계속 한대요. 취미로 평생을 하고 싶은 것.

 

       

          잘 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일치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나 확률은 굉장히 적습니다. 인턴십 하면서 이야기하는 또 한 가지는 정말 두려운 것, 피하고 싶은 것을 해 보라고. 아킬레스건이에요. 그런데 또 하고 싶어요. 굉장히 내성적인 친구가 연극단 활동을 했어요. 무대공포증이 있는데 그걸 극복해 보기 위해서 연극을 한 거죠. 처음엔 대사 다 까먹고 망치는 게 여러 번. 지금은 중견 배우. 극복하면서 자기 직업이 된 케이스. 좋아서 그 쪽으로 간 케이스도 있지만 극복하면서 자기를 깨닫게 된 케이스도. 발견하는 친구도 있고 모색하는 친구도 있고.

 

          이구동성을 하는 이야기가 내가 정말 무식하게 살았다. 너무 공부를 안 했구나. 2학기가 되면 인문학 학교를 스스로 여는 거죠. 스스로 자기 공부도 하면서 지식에 대한 욕구라든지 생겨나는 것 같고. 조금 늦는 거 아니냐는 교사들의 의견도 있고요. 부모들도 고1 때 해야 하지 않느냐는 분도 있고. 아직은 고3에서 하고 있습니다. 제일 좋은 건 교사들이 붙어서. 애들이 다 다르기 때문에. 중학교에 터져 나오는 애들도 있고 늦바람이 나는 애들도 있어서 관찰하면 잘 안다는 거죠. 부모들이 제일 잘 알지 않습니까. 자기를 닮았으니까.

 

          Q2 :   참고로 저의 딸의 꿈이 북유럽 공무원이 되는 것. 제가 볼 때는 중간의 과정을 뛰어넘고 결과만 보고 있어요. 시행착오가 필요한데 12살이 지나니까 자기 생각이 굳어져서 자기 스스로 자기 결정에 대해서 밀고 나가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부모가 맞닥뜨리는 면도 있고 그건 아니라고 모든 가능성을 차단시키는 것이 맞는가. 경계를 넘나드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쉽지 않은. 몸소 겪어보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게 맞는 것인지 간접 경험을 통해서 방향을 잡는 것이 맞는 것인지. 이젠 제 손을 떠난 느낌을 많이 받거든요.

 

          Q4 : 그런 것조차도 안 갖고 있는 애들이 많아 고민하는 부모님들도 많거든요.

 

희창 : 한국 공무원도 아니고 북유럽 공무원인데 좀 밀어주세요(웃음).

 

          유엔에 취직하는 게 아니고 난민을 돕는 것이 목적이니까 어느 순간 유엔에 있더라

 

           Q2 :   중간에 터닝하는 게 1년 과정. 현명하게 잘 넘어갈 수 있을지 고민. 9월이고 전형이 왔잖아요. 테마였던 것 같아요. 갑자기 고민이 몰려오는.

 

희창 : 진로 이야기할 때 기자 오면 어느 대학 갔느냐? 산청에서 서울대에 가니까 엄청 화제가 됐어요. 관심사가 다 다른 거죠. 일반화시킬 수 없는 거죠. 어떤 애들은 대안학교를 다니는데 무기력하고 그러고 앉았고요. 어떤 애들은 확 빨리빨리 올라가고. 그래서 깨달음이란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스스로 양성하는 과정. 교사나 학교는 조력자일 뿐. 깨달을 때 길과 진로가 생겨나는 것이지 그것 없이 물가에 끌어다 놓을 순 있지만 물 먹는 게 제 문제라는 거죠.

 

          졸업생 중 제일 잘 된 아이. 유엔고등판무관 돼서 중국으로 가서 월급도 천만 원 넘고. 하는 일은 난민 돕는 일이에요. 지가 정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 거죠. 고3 때 이미 “탈북자들 도와볼래?”라고 했더니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중국 보냈어요. 두 달 동안 같이 살더라고요. 난민 돕고 싶으니까 외국인노동자들 산재처리 못 받고 돈 못 받는 사람들 영어 못하니까 진술서 꾸며준 거예요. 유엔 지원할 때 고졸로 갔어요. 취직이 된 거예요. 딱 한 가지 묻더래요. 왜 난민을 도왔냐? 남북문제 이야기하고, 난민에 대해 관심이 있다고 하고. 깨달음. 내가 이렇게 살고 싶다는 확신이 있으니까, 유엔에 취직하는 게 목적이 아니고 난민을 돕는 것이 목적이니까 어느 순간 유엔에 있더라는 거예요.

 

          얼마 전에 와서 하는 이야기가 요즘 젊은이들 그걸 모른다는 거예요. 유엔에 취직하려고 하니까 절대 안 된다는 거지. 정말 사람을 돕는 것에 관심이 있으니까 그 일을 하고 있다는 거지. 그런 가치관, 깨달음 있으면 사람이 밥 못 먹고 살 수 있냐는 거야. 먼저 그 뜻을 구하라는 거죠. 궁극적 가치에는 관심이 없고 어떻게 취직을 하고 먹고 살지 생각만 하니까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사는 거죠.

 

          제 고백입니다. 제 학창시절이 행복했으면 학교 세웠겠어요? 불행하고 후배들한테는 자유로운 따사로운 학교 만들어주고 싶다고 하니까 학교 만들었을 것 아닙니까. 학교 퇴임할 때 보니까 40억을 벌고 나왔더라고요. 학교 세웠고 학교 빚도 갚았고 중국에도 학교 세우고 제주도에도 세웠어요. 내 돈은 하나도 없어요. 돈에 관심이 없으니까 그게 되더라는 거예요. 예를 들면 그렇다는 거예요. 애들에게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가치관이 눈에 보입니까? 나 어떻게 살고 싶어, 그게 진로인 거지. 눈에 보이는 진로 다 껍데기입니다.

 

          학부모 운영위원 중 한 분. 요즘 의사가 뭔 줄 아냐고. 진단하는 사람. 다 기계가 한 대요. 자기는 암환자 하나 들어오면 3억을 벌어줘야 월급 천만 원 받을 수 있다고. 그런 의사가 되기로 마음을 먹고 되어야 살 수 있지 아님 너무 불행하다는 것. 변호사, 도둑놈들 감형해 주는 게 변호사죠.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는 절대로 졸업생 중 한 명이 “국경없는의사회 할래요,” 하면서 그 공부하는 친구 있어요. 의사 공부하는데. 그게 더 중요하다는 거죠. 자기가 행복해야 하거든요. 진로라는 건. 남이 보는 눈 아무 상관없다는 거죠. 이래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느냐는 거죠.

 

 

           애들이 좀 혁명가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이야기하면 “선생님은 현실을 모르시는군요. 먹고 살 수 있습니까? 정말 현명해지면 그런 이야기 못합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럼 평생 준비만 하다 끝납니다. 20대가 죽을 준비해요. 노후연금 들고 앉았어요. 현재를 살지 못하고 미래만 준비하다 끝난다니까요. 그 불안감을 진로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압력을 줍니다. 그러니까 개혁도 못하고 사회를 바꾸지도 못하고. 대학생들이 카드 여러 장 있어요. 편의점 가서, 극장 가서 할인 엄청 잘해요. 그런데 지가 왜 쫑나는지 몰라요.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왜 힘든지 몰라요. 바꿀 능력이 없다는 거죠. 99가 1에 복종하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놓고.

 

          제 개인적인 바람이 있습니다. 애들이 좀 혁명가가 되었으면 좋겠다. 자기 분야에서. 확 바꿔버렸음 좋겠다. 그런 바람이 있었던 거죠. 고백. 내가 너무 무리한 요구를 했구나. 요즘 와선 졸업생들이 “선생님도 변하셨군요. 그 이야기 할 때 좋았었는데.”라고 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전망을 갖지 못합니다. 살아갈 재미를 찾지 못하는 거예요. 가치 있는 일도 없고요. 너무 식상하다는 겁니다. 찌들려있고. 직업을 만들어주고 일자리 만들어준다고 될 것 같습니까? 전망과 가치관이 필요합니다. 현실과 이상을 적절히 조화를 이루면서 아이와 이야기해야 한다는 거죠. 현실만 이야기해선 안 되고 이상만 이야기해도 안 되고.

 

          Q3 :   얼마 전 제천간디에서 민주노총 위원장을 면담하겠다고 고3 학생이 와서 이야기를 하는데 왜 노동자가 권력을 갖지 못하냐? 민주노선의 문제가 무엇이냐? 고 하는데 사회과학서적을 너무 잘 꿰고 있는 거예요. 제천간디에서 그 친구가 특별한 건지, 다른 아이들도 그렇게 해박한 건지.

 

희창 : 걔는 겉멋이 든 거고요. 잘 몰라요. 아빠 영향을 많이 받아서. 은연중에 자기가 투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실제 생활은 전혀 달라요. 세상에 나가면 깨지는 거죠. 무식하다는 것도 알게 되고 겸손해지고 본성은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하게 되고. 그 과정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찾아가는 거죠. 

          농사 짓겠다고 마을에 들어온 아이는 정말 고민을 많이 한 아이에요. 텃밭도 가꿔보고 농사심화과정도 거쳐보고 그러면서 정말 자기를 단련시킨 거죠. 단련시켰다는 것은, 농사꾼이 되겠다는 것은 하루 8시간 노동이 몸에 익어야 가능한 것. 현실. 체력도 되어야 하고. 그 훈련을 받은 거예요. 훈련을 받고 나서는 딱 농사꾼이 되겠습니다. 그 애도 노조에 가보면 겪게 되겠죠. 지금은 그것에 대한 이상이 있습니다. 노동조합이 살아야 세상이 산다. 대부분은 그런 생각 안 갖고 삽니다.

            물음의 과정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Q5 :   저희 아이가 고등과정에서 일반학교 선택. 저는 대학이 목적이라면 검시를 보고 아예 입시를 보라고 했어요. 그런데 일반학교를 갔고 대학 때문에 간 건 아니라고. 안 가도 된다고. 사회진출반이 따로 있대요. 그럼 성미산학교를 왜 나왔니? 라고 묻자 이 학교를 다니지 않는 게 목표였기 때문이라고 해요. 그래서 지금 너무 좋다는 거예요. 그런데 문화가 그러니까 숙제 내주는 거 열심히 하는데 매몰이 되어 있으니까 아무것도 보질 않아요. 그런데 학교를 다니면서 너무 무기력했고 불행했는데 지금은 행복하다는 거예요. 굉장히 충격. 너를 위해서 보냈는데 떠나니까 행복하다고. 지금은 유치원 교사가 되고 싶다는 거예요. 굳이 대학 안 가고 방통대 유아교육과 나와도 되고 보육교사 자격증 따도 되고. 학교에서 주어진 것을 너무 열심히 하면서 좋은 대학 안 가도 된대요. 굉장히 상처가 되더라고요.

 

희창 : 지금은 그렇게 해석을 하지만 성미산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서열, 계급을 무시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거예요. 그냥 일반학교 나온 친구는 절대 그렇게 생각할 수 없습니다. 지방대 나온 애들은 다 자기가 재수 없어서 지방대 나왔다고 말해요. 엄청 열등감 덩어리. 반에서 1, 2등 빼고는 다 열등감 덩어리. 지금은 인정 못할 겁니다. 그렇게 언어로 표현하지만 일반학교가 행복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건 성미산학교를 다녔기 때문. 

          우리 학교에도 그런 아이 한 명. 교복을 입고 싶어서 일반학교 간 아이. 너무 행복하대. 룰이 좋고 질서를 경험하는 것이 색다른 경험. 지금 고등학교 1학년? 2학년 되면 조금 달라집니다. 2학년이 되면 그 세계가 눈에 보이기 시작. 정말 서열의 세계. 상위 1, 2% 제외하면 해 줄 이야기가 없다고 해요. 교사들이. 그걸 경험하기 시작하면 자기가 굉장히 초라하게 느껴집니다. 거기에 굴하지 않고 재미있게 지내면 가능하죠.

 

          Q5 :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주변에선 잘 다니고 있는 애한테 왜 그렇게 이야기 하냐고.

 

희창 : 무조건 동의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저하고도 싸워야 합니다. 또 한편으론 아이와 끊임없이 갈등할 수 있어야 해요. 물음의 과정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진로에 대해 시원하게 대답해주고 세상에 그런 게 어딨습니까? 우리가 4, 50이 돼도 내 꿈대로 살았나? 행복했나? 우리 나이가 돼도 계속 찾는 거 아니에요? 삶의 의미를 찾는 거 아닙니까? 그런 모습을 계속 보여주는 게 중요합니다. 확 변해서 나중에 공부하고 싶다고 할 수도 있고요. 지금 대학 가서 장학금 받고 공부 잘 하는 애들 와요. 학교 다닐 때 진짜 공부 안 하던 아이들. 모르겠더라고요. 어떻게 될지. 대신 애들에 대해선 희망적으로 묻어 두죠. 북유럽 공무원 되고 싶다고 하면 되도록 해주고. 얼마나 재밌습니까. 부모들 인생이 이모작이 돼서 우리가 사는 게 더 중요해요. 애들 걱정하지 말고. 

[출처] [대안교육과 진로] 뒷모습 보며 사는 거지요_양희창 선생님|작성자 성미산학교

 

 

 

8-9월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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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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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
  • 김민중 2015-09-15 오후 5:40:53

    홈페이지에서 만나는 제주 소식이 반가워요~
    맨날 핸드폰으로 사진을 보다가 모니터로 크게 보니 새롭네요.
    봤던 사진도 다시 보게 되고, 아이들은 더 이뻐 보이고.
    예전엔 그냥 내 새끼들.. 이랬는데, 이젠 친구 먹어야겠어요.ㅋㅋㅋ
    요즘 지리산종주 준비하는데, 자(연반) 지(리산) 아빠들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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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영 2015-09-16 오전 10:19:43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많이 생각하게 하네요 감사합니다. 제주 사진은 그냥 그대로가 풍경도  아이들도 예술이네요

    답글쓰기
  • 박재형 2015-09-16 오후 5:23:34

    강추!!! 내용도 좋고 생각치 못한 사진도 좋고~

    답글쓰기
  • 유명제 2015-09-16 오후 10:46:27

    신입생인 저에게 숙고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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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기동 2015-09-18 오후 3:51:34

    미소가 저절로 나오는 애들모습에 감동입니다 이래서 볍씨인가봐요~~` (하트 빵빵 날립니다)

    형님 상담 받으러 저녘늦게 가도 돼죠? 흐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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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경순 2015-09-19 오전 9:08:52

    하하하
    사진보고 실컷 웃다갑니다
    애들이 완전 아줌마 아저씨됬어요
    건강해보여요

    답글쓰기
  • 이기현 2015-09-19 오후 4:47:15

    제주도가 이리 멋지다니...제주도 가보는데 소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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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영 2015-09-22 오후 11:28:10

    오랜만에 왔는데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아이들이 행복해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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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인 2017-09-11 오전 12:41:40

    늦은밤 예전 볍씨글들을 보다가 좋은내용인거 같아서 메인에 나올수 있도록 댓글남깁니다.^^
    선배님들은 다들 아시겠지만 신입들은 모르니까요.


    왜 요즘엔 이런글이 안올라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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