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들판의 꿈] 북콘서트에 오기전에~*
작성자 : 변영진 | 등록일 : 2016-10-25 13:19:40 | 조회수 410
첨부파일 : 차별에 저항해온 장애인운동의 역사_노들야학으로부터(배포용).hwp [84Kb]               

[노란들판의 꿈] 북콘서트가

2016년 11월 4일 (금) 오후 7시, 평생학습원 공연장(2층)에서 있습니다.

(아이들은 406호에서 영화를 보여주려고 합니다.)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그들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북콘서트이긴 하지만 책을 읽지 않아도 참여하는데 큰 무리는 없어도

내용을 조금은 알고 온다면 더 풍요로워지겠지요~

홍은전 선생님이 주신 자료가 있어서 올립니다.

바쁘셔서 시간이 없으신분들은 잠깐의 짬을 내서 읽을 수 있는 분량입니다.

책에 있는 내용이기도 하고 오기 전에 보고오시면 좋을 듯해요~

 

[발췌한 내용 중]

 

누구는 가산점 1점을 위해 각종 자격증을 따는데 누구는 아직 제 이름 석자도 배우지 못했다고 했다. 어떤 이는 평생 죽을힘을 다해 달려 왔는데 어떤 이는 평생 같은 자리에 누워 창밖만 바라보았다고 했다. 처음엔 그저 연민이나 분노인 줄 알았다. 나를 잠시 멈춰 서게 한 그 힘은. 그러나.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았던 그들이 벼랑 끝에서 스스로 몸을 던져 길을 만드는 것을 본 뒤 나는 깨달았다. 그것이 아름다움임을. 인간이란 존재는 어떠한 조건 위에서도 존엄함을 포기하지 않는 한 그러하다는 것을. 그래서 그들을 믿어도 좋다는 사실을.

 

[소감문1]

 

어느 날 사고로 인해 나에게 장애가 생긴다면? 눈이 보이지 않는다면? 손가락이 잘라져나간다면? 등등 문득 장애가 생긴다면 어떨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때마다 정말 힘들 거야. 나는 몸이 건강해서 다행이야. 라고 안심하며 지나갔다. 동시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나보다 못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라 단정 지어 판단했다. 어쩌면 나보다 더 마음이 단단하고 건강한 사람들일 수도 있고, 그들 나름대로 온전한 일상을 살아갈 수도 있는데 나는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향해 잘못된 시각으로 측은지심을 느끼고 있었다. 왜냐하면 장애는 어쩔 수 없이 보통사람들 보다 약자가 되는 것이고 불평등을 당하게 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볼 땐 더 겸손하고 배려하고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장애를 불편하게 여기면서도 그 마음은 숨기고 겉으로만 장애를 가진 사람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며 입으로만 떠들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이 되었다.

 

이렇게 돌이켜보니 내 멋대로 이미 판단하고 오해한 것들이 너무 많이 보이는데 사실 나는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던 아빠가 한 쪽 다리에 의족을 차고 지낸 장애인이었기 때문에 장애를 생각할 때 좀 더 복잡하게 여기게 되는 것 같다. 우리 아빠는 10살쯤 강원도에서 살았는데 기차가 정차하고 있을 때 기차에 타고 있다가 천천히 출발하면 뛰어내리는 놀이를 했다고 한다. 그 놀이가 마치 그 동네 아이들의 용맹함을 결정짓는 행동이었나 본대, 아빠는 그 때 잘못 뛰는 바람에 한쪽 다리를 잃었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태어났을 때 이미 어른이 된 아빠의 생활은 그리 불편해보이지 않았고 아빠의 모습도 나에게 큰 불안을 주진 않았던 것 같다. 그저 여름에도 통 넓은 긴 정장바지를 입고 구두를 신고 있는 아빠 모습이 익숙했을 뿐. 그런데 아빠가 앉거나 움직일 때 어쩌다 바지 밑단으로 보이는 플라스틱 의족이 조금 심쿵하고 창피했던 기억이 난다. 특히 친구들이 경미 아빠는 왜 다리가 저렇지? 라고 하면 알면서도 물어보는 그 물음들을 애써 외면하고 모른 체했던 가엾은 내가 생각난다. 아빠의 장애는 나에게 아무런 영향도 없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돌이켜볼수록 영향이 없진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생각하기에 장애를 겪는 아빠를 보면서 장애가 있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보다 더 깊은 곳에는 차마 아빠라서 말하지 못했던 장애에 대한 부분을 창피함, 불완전함, 불쌍한, 측은한 등 여러 가지 의미를 갖다 붙이면서 장애를 편하게 바라보지 못하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한 번씩 노란들판의 꿈과 같은 책을 읽고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가치를 다시 풀어내서 다른 사람들과 얘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 다행이다. 항상 입버릇처럼 느리더라도 함께 가는 세상을 꿈꾼다고 하면서도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맑지 못한 것이 사실이고 겪어보지 않은 부분을 함부로 판단하고 오해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번 책 나눔을 하면서 장애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어 의미 있었고, 그들이 사는 세상과 내가 사는 세상은 결코 다르지 않고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함께 나눔을 해주시는 이 공동체 모두에게 정말 감사하다.

 

[소감문2]

 

장애인은 1, 비장애인은 9.

1에 속해 있는 사람과 9에 속해있는 사람들은 공존하지만 사는 곳이 다르다.

9인 사람들은 1들이 어떻게 사는지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장애인으로서 경험해 본적이 없기에 그들이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는지,

그들이 어떤 분노와 좌절을 경험하고 있는지 생각해본 적도,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우리는 일상에서 쉽게 하는 일들이 그들에게는 작은 턱 하나도 큰 산이 되어 돌아온다.

 

누군가의 도움없이 움직일 수 없는 그들은

채널 돌려줄 사람이 없으면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화면을 그대로 보고만 있어야 한다.

먹여줄 사람이 없으면 누워서 하루종일 굶어야 한다.

일으켜줄 사람이 없으면 누군가 올 때까지 화장실 가는 것을 참아야 한다.

데리고 나가줄 사람이 없으면 화재가 나도 불에 타 죽어야 한다.

 

그들은 원하는 머리스타일, 하고 싶은 것을 말해본 경험이 별로 없다.

그저 참고, 견디고, 버티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다.

그 속에 묵어진 좌절, 분노, 슬픔을 우리는 짐작하기가 참 어렵다.

 

그동안 나는 그들은 불편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도움 받을 곳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하고 말이다. 복지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고 나라 탓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은 시설에 들어가서 일방적인 돌봄을 받는 것이 아니다.

어디보다도 가고 싶지 않은 것이 시설이었다.

시설은 자유와 인권이 전혀 없는 우리에게는 감옥 같은 곳이다.

그들도 우리처럼 누군가에게 누가 되지 않고,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독립성을 갖고 싶어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능 말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이라는 차별적인 생각이 내 안에 있었던 것이 부끄러워진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함께 살아가는 것인데 말이다.

 

 

홍보지-노란들판 북콘서트.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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