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과정 인권여행- 위안부
작성자 : 박기태 | 등록일 : 2016-12-08 00:14:44 | 조회수 3559

작성자: 양사랑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 2학기 인권여행을 위안부라는 주제로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1학기 때 위안부에 대해 공부를 한 다음 모임에서 소수의 사람들과 나누었습니다. 그렇게 얼마지 나자 위안부 합의 내용이 논란이 되었습니다. 합의내용을 보면,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10억 엔을 받고서 정부에선 위안부 관련된 이야기를 안 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위안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대 위안부의 역사는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식민지 지배를 받을 때 일어난 일이란 걸 알고 놀랐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제가 일제 강점기 시대에 관심이 생긴 이유라 생각 됩니다. 저는 인권여행 주제를 선택할 때 현대사랑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현대사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 있었지만 위안부는 공부했던 것이라 여행준비를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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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선택한 위안부라는 주제로 당일치기 여행과 강의를 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배우지 못한 위안부 지식과 강의때 볼 영상을 찾기로 했습니다. 위안부 인터넷 자료들을 보니 “위안부” 라는 이름을 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원래는 정신대라는 이름을 썼지만 정신대의 뜻은 몸을 바친 부대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서 1980년 대 후반부터 위안부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대 위안부를 말하는 용어(이름)는 아주 다양합니다. 하지만 종군위안부는 잘못된 이름입니다. 종군위안부의 종(從)은 “자발적” 이라는 뜻이어서 그렇습니다. 자발적으로 간 여성들 보다는 강제로 일본군에게 끌려간 여성들이 많아서 종군위안부라는 말보다는 강제종군위안부나 위안부, 아니면 군 위안부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맞습니다. 위안부 여성들은 평균나이 16살 이였습니다. 여성들은 위안소라는 곳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위안소는 끌려온 여성들을 성노예로 만들어서 생활하는 곳이고 규칙은 엄격하고 고기마냥 등급을 매겼습니다. 위안소에 들어온 지 1~2달 정도 된 사람은 1등급이라 하여 주로 장교들을 상대하게 하였습니다. 2등급은 6~10달 정도 된 사람을 말하고 3등급은 그보다 오래있었던 사람을 말합니다.SAM_8040.JPG

그렇게 시간이 지난 뒤 전쟁에서 피해자 일본은 위안부들을 막 죽이거나 정글에 버리고 갔습니다. 하지만 일부의 위안부는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 고향으로 갔습니다. 자신이 가면 가족들이 피해를 받을까봐 아예 고향으로 안돌아간 사람들도 있습니다. 만약 저라면 집으로 돌아가고 싶겠지만 나 때문에 상처받는 사람이 있어서 집으로 못 돌아갈 것 같았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1990년 6월 일본정부는 당시 정부가 관여하지 않아서 상황을 파악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분노한 한국의 37개 여성 단체에서 항의를 담아 일본에게 공개서한을 전달했지만 회답을 하지 않아서 한국 37개의 여성 단체는 1990년 11월에 정신대 문제 대책 협의회를 발족시켰습니다. 정대협은 항의 공개서한을 일본대사관에 전달하고 항의집회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1991년 김학순 할머니께서 첫 증언을 하신 뒤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 전 일본총리가 한국을 방문한계기로 수요집회가 시작되었고, 현재까지 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당일여행을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 수요집회에 가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편지도 쓰고 피켓도 만들어서 수요집회에 갔습니다. 가보니 사람들이 많이 왔는데 거의 다 학생 이였습니다. 수요집회의 시작을 알리는 “바위처럼”노래가 나온 뒤 김복동 할머니의 발언이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우리가 와줘서 고맙고 전쟁이 일어나 눈물 흘리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다음은 자유발언 시간 이였습니다. 학생이 많다보니 저보다 어린아이들도 발언을 했습니다. 저는 편지를 읽은 뒤 할머니들께 전해 들렸습니다.SAM_8107.JPG

 다음으로 정대협 사무실에가 그곳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선생을 만나서 강의를 들었습니다. 선생님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고 수요집회는 몸이 약해져서 못 나오시는 분들이 많지만 그래도 꾸준히 나오신다고 했습니다. 사실 수요집회에가서 할머니를 못 만나면 어떡하지 걱정을 많이 했지만 할머니들이 계속 나오시고 계셔서 기쁜 느낌이 들었습니다.

 할머니들 말고 그 자리를 계속 지키시는 분이 한명더 계시는데요, 바로 소녀상입니다. 소녀상은 비록 맨발이지만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위안부 문제를 생각해보면 저와 같은 나이에 끌려가신 게 상상이 안될 만큼 충격적이고 그런 상황을 버티셨다는 게 너무나도 존경스럽습니다. 이렇게 저희의 여행은 끝이 났지만 끝났다고 있어서는 안 된다 생각합니다. 어서 빨리 일본이 공식 사죄와 배상 그리고 전쟁범죄 인정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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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합니다^^
위안부팀-박기태, 배가현 ,양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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