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 이야기
작성자 : 이영이 | 등록일 : 2017-02-12 11:34:32 | 조회수 4001

                                       홀로 서기, 존재의 확인

 

                                                                                                 이영이

 

중학교 3학년은 너무 어리지 않나요?

 

  모든 선생님들이 기피하는 중2, 중3. 흔히 격변기라고 하는 이 시기를 교실에 갇혀 지내는 건 아이들에게나 (그들의 터져 나오는 격정을 마주해야 하는) 부모나 교사 모두에게 고문이다. 사실 이 시기는 부모로부터 내적 독립을 해야 하는데 우리 현실은 거꾸로다.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부모는 아이를 붙잡고 늘어진다. 아이 또한 어쩔 수 없이 부모에게 기대면서도 내적 갈등과 투쟁은 격화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시기 아이와 부모는 대화다운 대화가 불가능하다.

  겉으로 보기에 아무리 무기력해 보이는 아이라 하더라도 그 내면에는 멋진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남들보다 잘 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무엇 하나라도 제대로 해 내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다. 단지 실행단계에서 무너질 뿐이다. 반대로 학교나 가정에서 별 문제없이 잘나가고 있던 아이들도 실전의 단계에서는 치러야 할 과제들이 있다. 이론과 실제가 다르기 때문에 막상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예전에 쉽게 넘어가던 문제들이 넘기 힘든 산으로 다가오기도 있다.

   볍씨에서는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하기 전 실전의 세계, 자신들이 8년 동안 배운 삶의 태도와 기술, 가치를 온전히 삶으로 살아보는 것으로 통과의례를 삼고자 했다. 이 통과의례는 반드시 부모와의 분리를 전제로 한다. 이것은 공간의 분리만이 아니다. 정서적, 경제적 분리를 통해 가능하면 부모의 간섭을 받지 않게 한다. 그래야 온전히 자기의 두발로 서는 게 가능해 지기 때문이다.

  통과의례를 거침으로써 이제 아이가 아닌 어른의 세계로 이행해 가야 할 시기에, 부모와 분리되어 자기 존재로 서는 경험을 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아이들은 이미 육체적으로 어느 정도 근력이 형성되어 있어서 성인이 하는 만큼은 아니지만 웬만한 일은 거뜬히 감당할 수 있고, 스스로 자신의 삶을 고민하고 내면의 갈등을 진하게 겪어 낸다.

  이 시기 아이들은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확인을 하고 싶어 한다. 학교와 집 같은 익숙한 환경이 아닌 진짜 자신들이 궁금해 하는 실제의 세상, 실제 사회 속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일지를 궁금해 한다. 어른들의 세계를 직접 몸으로 경험하고 싶어 한다. 그들은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고 싶다. 그리고 확인하고 싶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장 중요한 것은 정체성이다. 바로 자기가 누구이며 왜 이 세상에 왔는가를 어렴풋이나마 알아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제주살이는 스스로의 선택으로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주학사 생활의 모든 과정은 자기 선택과 그에 따른 책임이라는 걸 아이들도 교사도 잊지 않으려고 한다.

  중학교 3학년은 어리다. 하지만 열여섯은 결코 어리지 않다. 그들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으로 가득하다. 단지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과 걱정이 있을 뿐이다.

 

 그럼 공부는 언제 해요? 너무 일만 하는 것 아닌가요?

 아침 6시 반에 일어나 달리기, 요가를 하고 아침을 먹는다. 물론 아침밥을 하는 아이들은 5시 반부터 가마솥에 불을 지피기 시작 한다. 아침 먹고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일을 한다. 우리가 짓는 농사를 하기도 하지만 동네 삼촌들이 부탁하는 밭일 알바도 해야 한다. 10시가 되어가면 식당 알바 가야 하는 친구들은 씻고 나간다. 2016년에는 집도 지어야 해서 집짓기와 밭일을 함께 해야 했다. 어떤 날은 농사팀과 건축팀, 두 패로 나뉘기도 하고, 알바팀까지 세팀으로 움직일 때도 있었다.

   처음 제주살이 시작하던 2013년에는 아이들이 집짓기 경험을 꼭 해 봤으면 종겠다고 생각했다. 집짓기는 몸과 머리를 다 써야 하는 것이니 그만큼 풍부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고 다른 일에 비해 성취감도 클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동네방네 소문내서 동네 분 흙집 짓기를 같이 했고, 두 번째 해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집 한 채를 리모델링했다. 하지만 삼년차가 되니 마을 안에서 집짓기를 하기에는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평대 생태마을 집짓기 하는 곳에 일찌감치 예약을 해 놓았지만 건축주의 반대로 하루 만에 되돌아 와야 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농사에 주력하게 되었다. 물론 그 동안에도 농사는 제주학사의 가장 기본적인 노동이었지만 집짓기를 하지 못하게 되면서 농사규모는 점차 확대되었다. 2013년과 2014년에는 우리가 먹을 채소와 감자, 고구마, 콩, 쪽 정도였는데 2015년에 2천평 정도 농사를 했고 작년에는 3천5백평이나 되는 밭농사를 했다. 이제는 우리가 먹는 것 이외에 여행자금 마련을 위한 판매를 염두에 두고 메밀농사를 해 보기도 하고, 단호박 농사도 일찌감치 시작했다.

   집짓기와 농사, 두 가지를 놓고 어느 것이 아이들에게 더 도움이 되었는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다만 집짓기는 모두가 성취감을 느낄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모두가 초보자로 시작하지만 하다 보면 더 비중이 높은 일을 하는 사람과 보조하는 사람으로 나뉘게 되고 좀 더 기술적으로 진화하는 아이와 여전히 뒷설거지 하는 일을 주로 하는 사람으로 분화되는 것이 집짓기라면 농사는 모두에게 평등한 기회를 준다는 것이 장점인 것 같다. 처음에는 집짓기만큼 농사는 아이들에게 성취감을 주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해 보니 농사의 성취감은 너무도 즉각적인데 비해 집짓기는 매일 자신의 족적을 확인할 수 없었다.

   이제는 집짓기를 찾아다닐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농사야말로 이 시기 아이들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확신할 수 있다. 아이들 스스로의 고백이 그렇기에 더 확신할 수 있다. 밭일을 할 때 가능하면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삽이나 낫, 호미 같은 간단한 도구를 사용하는데 한 시간 하고 뒤를 돌아보면 자신이 해 온 일의 성과가 그대로 보인다. 어느 날 고구마를 5단 심었다. 아이들은 고구마를 무척이나 좋아하기 때문에 고구마를 더 심겠다고 했다. 그래서 삽을 들고 밭을 더 만들었는데 남자 아이 한명과 여자 3명이 순식간에 엄청난 규모의 땅을 뒤집어 밭을 일구었다. 동네 삼촌이 와서 보고 깜짝 놀란다. 이걸 삽으로 했다구? 너희들 인간 경운기구나 하면서.... 자신의 힘을 써서 일을 하는 건 언제나 분명한 노동의 결실이 있다. 그건 동시에 자신의 몸에 대한 확신을 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에 대한 태도가 점점 달라지게 만든다. 농사일은 자연의 흐름을 몸으로 체득하게 만든다. 내가 땅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저절로 알게 된다. 내가 힘들게 팡을 파고, 씨앗 뿌리고, 거름주고, 검질메기(풀뽑기)를 했을 때 생명이 더불어 자라고, 그 생명을 다시 내 생명을 위해 쓰이게 되는 순환이 일상이 되는 경험은 나 역시 자연의 흐름 속에 있다는 걸 알게 해 준다. 지극히 단순하면서 평화로운 삶을 살면서 이것이 ‘살아있음’이란걸 알게 된다. 이렇게 살아도 좋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게 한다.

  물론 농사일은 힘들다. 땡볕에서 땀을 흘려야 한다. 단순한 노동을 반복적으로 해야 한다. 그렇기에 개인이 갖고 있는 온갖 격정의 행태들이 그대로 드러난다. 특히 작년에 콩 천평을 심어 복날 더위에 새벽부터 저녁까지 3주 동안 검질 메던 일은 지치는 일이었다. 꾀 부리기, 짜증내기, 옆 사람에게 신경질 내기, 못 알아 들은 척 하기, 도구 함부로 다루기, 최소한만 하기, 대충하기, 자기는 안하면서 남한테 시키기, 느릿느릿 속도 늦추기 등 유형별로 다르지만 공통적인 건 “힘든 건 안하고 싶어” 다. 많은 핑계가 있지만 그 핵심은 귀찮음과 힘듬이 싫은 것 뿐 다른 이유가 없다. 그렇기에 자신의 내면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직면할 때 아이들은 지금 보이는 찌질함 너머 맡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성실하게 한 삽, 한 삽 삽질하는 나를 확인하게 된다. 그 때 자기 존재의 위대함을 스스로 발견하게 된다. 결론은 뿌듯하고 당당하다, 농사일은 어떤 일을 하든 이 경험을 하게 해 주는 힘이 있다.

 

함께 사는 것, 어렵잖아요?

-24시간 함께 살아보기

   우리는 학교에 살지 않는다. 그냥 집에 산다. 그것도 작은 집에서 산다. 각자의 방이 있는 것도 아니다. 방문조차 없다. 그저 커튼으로 옷 갈아입을 때만 가리는 정도다. 한참 사춘기 아이들을 이렇게 해도 괜찮은가 가슴 졸이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문이 있었는데 다 떼어 버렸다. 집이 제주도 전통가옥인지라 방이 아주 작다. 그곳에서 최대한 많이 부딪혀 보게 하는 전략이다. 사나흘에 한 번씩은 자기 짐 정리를 제대로 하자는 안건이 올라온다. 사물함이 작아서 옷들이 삐져나오고 바닥으로 흘러내린다. 그렇다고 사물함을 키우면 이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아니다. 이렇게 정리가 안 되는 친구들은 방 하나를 통째로 내 주어도 바닥에 굴러다니고 구석에 쳐 박아두는 일상이 계속된다. 함께 살려면 자기만 생각하는 나쁜 습관을 바꿔야 한다.

   누군가와 불편해 지는 건 흔히 있는 일이다. 일하다 보면 누군가가 얄밉다. 얌체짓 하는 친구를 보면 지나치기가 어렵다. 자기 빨래를 대야에 담아놓고 며칠씩 지나가면 가만히 놔 둘 수가 없다. 말도 없이 내 우산을 쓰고 가 버려 비를 맞아야 하는 날도 있다. 같이 밥 지기를 하는데 깨워도 매번 일어나질 않는다. 이 친구랑 짝이 되는 날은 운수 없는 날이 된다. 누군가와 같이 일하면 나만 일을 많이 한다는 게 억울해 진다. 밥 하다가 반찬그릇을 태워 먹은건 내가 아닌데 정작 나만 혼난다. 옆에 있으면서도 자기가 태워 먹은거라고 고백하질 않는다. 사실대로 이야기를 하면 고자질 하는 것 같고 말을 안하자니 억울하고....수도 없이 많은 사건과 사고가 이어지는 건 당연하다.

   24시간을 함께 산다는 건 화 나는 일, 짜증나는 일, 억울한 일, 회피하고 싶은 일 등. 하루에도 온갖 감정들이 올라오게 만든다. 그것도 여러 사람이 같이 사니 오죽하랴. 학교에서는 이런 경우 모든 걸 중단하고 둘러앉기를 하지만 제주학사는 중단할 수 없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정 속에서 일을 하다 멈춘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저녁식사 후 하루나눔에서 글로 정리해 이야기를 한다. 억울한 마음을 풀 작정으로 남 탓으로 시작되지만 결국 들어가 보면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란 걸 스스로 깨닫게 된다. 이야기의 힘은 놀랍다. 시간이 갈수록 스스로를 성찰하는 힘이 생긴다. 관계를 통해 자기를 발견한다. 관계의 어려움을 재해석해 내는 훈련이 된다. 그렇기에 사건이 많이 생기면 좋다. (잠, 잘 시간이 줄어드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2017년 제주살이에 함께 할 친구들이 얼마 전 선배들 몇 명을 불러서 제주학사 생활 이야기를 나눈 자리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선배들이 한 말 중 가장 인상 깊게 들었던 말이 “솔직해라. 정직하게 자기를 고백하라”였다고 한다. “솔직하게 정직하게” 참 좋은 이야기지만 막상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정직하게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기란 무척 어렵다. 어떻게 하든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먼저다. 그런데 같이 살다 보니 도망갈 곳이 없다. 그냥 인정하는 수밖에. 그것을 알기 까기, 아니 실행에 옮기기까지는 많은 과정이 필요하지만 도망가지 않겠다고 멈췄을 때, 그 때 내 안에 결단의 힘이 생긴다는 걸 깨닫는다. 그럼 도전할 수 있다. 변화와 성장에 대한 막연한 욕구가 아닌 구체적으로 나의 무엇을 바꿔내겠다는 의지를 갖고 도전하고, 결과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 때 비로소 자기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자존감이 회복되고 진정한 존재자로 서게 되는 것이다.

  그런 순간이 오면 그 아이만이 아니라 함께 사는 우리 모두는 같이 당당해지고, 자랑스럽다. 그것을 나는 기적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매번 기적을 경험하기에 제주학사에서 함께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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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재형 2017-02-13 오후 5:17:46

    제주학사에 대한 이야기들이 올라오면 그냥 스치듯 읽어가며 음~ 좋구나, 멋진데~, 부럽다~
    이런 막연한 추임새만 했었다는걸 새삼 느낍니다. 
    오늘처럼 한글자, 한단어를 곱씹으며 읽어보긴 처음이네요... 죄송합니다.
    솔직히 바쁜 현대인들에겐 100% 타인의 삶을 공감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저 또한 그래왔구요.
    선배들이 아이를 보내고 적적해하고, 걱정하고, 작은것에 감동하고 수많은 무용담을 늘어놓을때 잠시 공감했고 호응했지만 그때뿐이었던것 같습니다.  
    좀더 가슴으로 안아주고 격려해주고 함께 즐거워하고 힘들때 술한잔 나누지 못해 아쉽습니다.
    어느덧 제가 제주학사의 운명을 같이할 가족이 되었습니다. 아직 실감이 나질 않습니다.
    아직 뭘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어찌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제주에 함께 있을 선생님들과 삼촌,이모,언니 그리고 10명의 친구들이 있어 걱정은 되지 않습니다.
    부모라는 울타리를 떠나 힘들고 배고프고 땀흘리고 고생하며 지내다보면 훌쩍 커오지 않을까요... 너무 커올까봐 살짝 걱정입니다.
    선생님들과 가족들에게 감사드리며 몇자 적어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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