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는 만두"의 한 발 늦은 들살림 후기
작성자 : 김민중 | 등록일 : 2017-06-12 17:35:02 | 조회수 3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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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부모둠장

들살림 회의를 위해 모여 앉았다. 5학년 두 명이 모두 모둠지기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아이들은 모이자마자 모둠장과 부모둠장부터 뽑았다. 하늘에 태양이 둘일 수 없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걸까. 우리 모둠은 아니었지만, 5학년이 모둠장과 부모둠장을 했으니 4학년은 부부모둠장과 부부부모둠장을 맡은 모둠도 있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데, 부부부모둠장을 맡았던 아이는 감투 노릇을 톡톡히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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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는 어려워

차이나는 만두는 샘까지 모두 10명. 5학년 형들에게 회의를 맡겼다. 회의를 시작할 때는 꽤 열기가 달아오른다. 저마다 의견을 이야기해서 계획에 반영하고 싶은 마음에 서로 말하기 바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보면 어느새 아이들이 반도 안 남아있다. 동생들은 이 핑계, 저 핑계로 자리를 떠서 돌아올 줄을 모른다. 놀 때는 몇 시간이고 참을 수 있는 오줌이 회의할 때면 왜 그렇게 자주 마려운지, 목은 또 왜 그렇게 타는지 물을 방금 마시고 또 마신다. 예니는 이것저것 아이디어를 마구 꺼내는데, 동의를 구하지 못하거나, 친구들이 이해를 못하면 금방 싫증을 낸다. 그리고선 연필과 연습장을 꺼내 혼자만의 세계로 빠져든다. 민영이는 진행이 제대로 안 돼서 답답하지만, 말을 꺼내서 뭔가를 해보려고 하지는 않는다. 회의를 할수록 느는 건 5학년의 한숨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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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구이를 먹게 된 이유

메뉴를 정하다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는 정우. 고기를 못 시키니까 물고기라도 먹자면서 형들이 고등어와 오징어 등 생선을 잔뜩 메뉴에 집어넣었다. 생선을 싫어하는 정우는 3박4일 동안 먹게될 고등어, 오징어를 떠올리니 울음이 절로 나올 수 밖에. 그러나 형들도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정우는 무슨 말에도 대답을 하지 않고 “싫어, 싫다고!”만 외쳤다. 어쩔 수 없이 샘이 나선다. 보람샘에게 물어보니 아예 못 먹는 건 아니라고 했다. “뚝! 울음 뚝 그쳐! 애기처럼 울지 말고 형들하고 얘기해서 정해라.” 결국 고등어조림을 하지 않고, 대신 구워먹는 걸로 타협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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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이 아팠던 강현이

모둠 친구들이 모두 모여서 분수대 앞에서 부모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출발하려는데, 강현이가 갑자기 눈물을 흘린다. “강현아, 왜 그래?” “아파서요..” “어디가?” “… 팔이요.” 잠시 멈칫하는 모습에 어디가 아픈지 알 것 같았다. 엄마를 두고 떠나려니 팔 아니라 어딘들 안 아플까. 그래도 꾹 참고 팔이 아프다고 말하는 강현이의 씩씩한 마음에 응답하기 위해 아프다는 팔을 주물러주었다. “금방 나을 거야.” 전철역에 도착하기도 전에 강현이 표정이 밝아졌다. 마음먹기에 따라 기분이 쉽게 바뀌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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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자리는 동생부터

아이들마다 앞 뒤에 배낭을 하나씩 메고, 손에는 침낭까지 들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피난민, 또는 이사 가는 줄 알겠다. 출근시간 피크는 지났지만, 아침 지하철엔 사람이 많다. 빈 자리가 별로 없다. 평소 들모임을 다닐 때 앉은 사람 중에 누군가 일어서면 아이들이 얼른 달려가 앉는데, 오늘은 동생을 부른다. “강현아, 이리 와서 앉아.“ “정우야.”, “승호야.” 그런데 1~2학년 동생들이 다 앉아있으면 더 이상 부르지 않는다. 3학년은 4~5학년 언니들과 경쟁을 해야 앉을 수 있다. 언니들이 배려해야 하는 동생으로 바라보는 나이엔 나름의 기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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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속삭임

대공원역에 도착한 아이들이 걷기 시작한다. 짐은 이고, 지고, 들은 채로 걷는다. 그냥 걷기만 해도 힘든데, 유혹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도넛, 회오리감자, 쥐포, 솜사탕까지. 보자마자 아이들이 하는 말, “선생님, 솜사탕 사주세요~, 도넛도요!” 뭐라고 대꾸해야 걸어갈 힘을 잃지 않으면서도, 다시는 조르지 않을까 잠깐 생각하는데, 한 녀석이 대신 대답을 해준다. “야, 나눔마당에서 조르지 않기로 했잖아.” “그건 이모삼촌이고! 샘한테는 졸라도 되잖아. 그쵸~ 선생님?” “아니 안 돼.” 신나게 달려가는 코끼리 열차는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고, 신기하고 편안해 보이는 리프트도 전혀 우리 것이 아니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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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는 돌아올 줄 모르고..

힘들게 도착한 야영장 입구, 짐수레가 놓여 있는 걸 보고 아이들이 환호했다. 짐을 다 들고 올라가야 되는 줄 알았는데, 짐을 내려놓을 수 있으니 반갑기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게다가 짐수레를 운전할 수 있는 재미까지 있다. 먼저 모둠짐을 한데 모아 짐수레 출발! 수레를 보내놓고 다시 내려오기를 기다리는데, 돌아올 줄을 모른다. 다른 모둠은 우리보다 늦게 갔는데도 벌써 내려와서 두 번째 짐을 싣고 올라간다. 뭐지?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올라가서 보니 수레를 가지고 올라간 아이들이 짐을 내려놓고 일 다했다며 텐트에 드러누워 있다. “빨리 내려가서 짐 다 가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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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우리 망했어요~

들살림 전 주에 준비물을 확인하다가 새누가 말했다.

“샘, 우리 망했어요~”

“왜?”

“주연이가 식칼을 가져오기로 했는데, 안 가져왔대요.”

“다음 주 월요일에 가져오라고 하면 되지. 뭘 망해?”

“아, 알겠어요.”

 

들살림 전 날 짐을 챙기다가 새누가 말했다.

“샘, 우리 진짜 망했어요~”

“왜?”

“주연이가 식칼을 가져오기로 했는데, 안 가져왔대요.”

“그래? 내일 가져오라고 해야 되겠네.”

“알겠어요. 주연아, 내일 꼭 가져와야 돼!”

 

들살림 짐을 정리하다가 새누가 말했다.

“샘, 우리 완전 망했어요~”

“왜?”

“주연이가 식칼을 가져오기로 했는데, 안 가져왔대요.”

“아… 그래.”

차이나는 만두는 들살림 내내 작은 과도 하나로 요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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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둥이 모둠지기

차이나는 만두의 5학년은 새누와 준호. 모둠지기는 5학년이 함께 맡는 거라고 누누이 얘기했건만, 우리 모둠의 두 5학년도 동생들과 모이자마자 누가 모둠장이 될 것인지 가른다. 새누가 모둠장, 준호는 부모둠장이 되었다. 자리가 그렇게 만들었는지, 원래 성격대로인 건지, 들살림 내내 준호보다는 새누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잔소리를 했다. 재밌는 건 선생님에게 잔소리를 들으면 5학년 두 녀석이 똑같이 움직인다. 먼저 아이들을 찾아 헤맨다. 아이들이 잘 보이지 않으면, (대개 잘 보이지 않는다.) 자기도 돌아오지 않는다. 다시 쫓아가 잔소리를 하면 짜증을 내며 아이들을 찾으러 다닌다. 그러다가 돌아와서 자기가 일을 하고 만다. 입으로는 계속 투덜댄다. 일이 끝날 때쯤 돌아온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지만 아이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언니들은 뭐라고 화도 못 내고 한숨을 내쉬며 상황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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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고 말지

민영이는 아이들과 일을 나누어 하는 게 힘들다. 일을 나누면서 실랑이하는 게 싫다. 사실은 일을 안 할 수 있으면 제일 좋다. 그런데 선생님 잔소리를 듣는 건 좀 더 싫다. 일을 해야겠는데 동생들은 놀러가기 일쑤, 5학년 언니들은 그런 동생들에게 뭐라고 말도 안 한다. 언니들의 집중력이 동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 민영이는 답답해하다가 그냥 혼자 움직여서 일을 한다. 자기 할 일을 끝냈으니 이제 놀러가도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샘을 바라보지만, 샘은 얼른 동생들 데려와서 일을 시키라고 잔소리다. 모른 척 놀러가 버릴 수 있으면 편하겠지만, 혼날 것 같아서 그렇게는 안 한다. 그래서 모둠의 상일꾼은 민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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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적수

예니와 윤승호가 같은 지기라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다. 즐거움이 제일 먼저인 예니는 항상 놀 거리를 찾는다. 일은 뒷전이다. 할 일이 있다고 수없이 일러줘야 겨우 뚱한 표정을 지으며 일어선다. 그리고 자기와 짝꿍인 동생을 찾아 대부분의 일을 떠넘겼다. 하필이면 그 짝꿍이 윤승호일 줄이야. 도대체 모둠 텐트에서 얼굴 찾아보기 힘든 윤승호이지만, 일을 할 때는 상황파악이 빠르다. 자기에게 오는 일이 조금이라도 많아 보이면 딱 잘라서 거절하고 달아나버린다. 예니도 별 수 없다. 윤승호가 아니었으면 예니의 구슬림과 윽박에 못 이겨 주는 일을 다 맡아갔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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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들, 다 컸네?

3학년 유준영, 2학년 양정우, 1학년 김강현.

모둠 명단을 받아들고, 한참을 갸웃거렸다. 골고루 짰다던데? 1~3학년이 다 모인 자리에서 같이 정했다던데? 왜 우리 모둠엔 각 학년의 아가들이 죄다 모여 있는 거지? 이거, 3박 4일 동안 보모노릇만 하다 오는 거 아냐? 분위기가 영 이상한데...

준비기간엔 예상이 빗나가지 않는 것 같았다. 강현이는 회의하는 형들에게 끊임없이 장난을 걸고, 정우는 메뉴가 맘에 안 든다며 울고불고 떼를 쓰고, 준영이는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올해는 그런 운명인가보다, 마음을 다잡고 들살림 시작. 그리고 반전. 엄마가 보고 싶어서, 그리고 아빠가 보고 싶어서 강현과 정우가 한 차례씩 눈물을 흘렸지만 그 밖에 애기짓은 전혀 없었다.

준영이는 씩씩했다. 맡은 역할을 누구보다 먼저, 누구보다 확실하게 해냈다. 학교에서 만난 준영이는 항상 혀 짧은 소리를 해서 원래 혀가 짧은 줄 알았다. 그런데 들살림 중에는 애기 목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뭔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온 느낌이었다.

정우는 짐을 잘 챙겼다. 밥도 잘 먹었다. 이대로라면 앞으로는 야외식당에 나가지 않아도 될 듯. 심혈을 기울여 그린 그림이 비에 젖었을 때는 속상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통곡했다. 빨랫줄에 널어주니 그제야 마를 수도 있겠구나 하는 기대 섞인 표정을 짓는다.

강현이는 엄마가 보고 싶은 마음을 몸으로 표현하며 꿋꿋하게 참아냈다. 첫날은 팔, 둘째 날은 배를 움켜잡았다. 셋째 날엔 한계였는지, 엄마가 보고 싶다며 눈물을 흘렸다. 엄마는 없지만, (가짜)아빠가 안아줄게, 이리 온. 무릎에 앉히고 한참을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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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 새 일자리

주연이는 들살림 때문에 학교를 그만 두게 생겼다. 엄마가 보고 싶어서 못 견디겠단다. 내년에 들살림이 오기 싫어서 전학을 가겠다고 한다. 그럼 가을들살림은? 자치들살림보다 하루가 더 긴데, 괜찮겠어? 음.. 가을들살림도 싫단다. 다른 건 다 재밌는데, 엄마를 못 보니까 안 좋은 거다. 그러면 가을들살림 전에 전학가야 하나? 그렇게 생각하니 너무 가까운 현실이다. 어쩌지? 그러다가 선우를 엄청 부러워한다. 아빠랑 같이 들살림을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가. 갑자기 좋은 수가 떠올랐다. 우리 아빠도 볍씨학교 선생님이면 좋겠다. 그럼 자치들살림을 같이 올 수 있을 텐데. 아니, 이왕이면 엄마가 선생님인 게 더 좋겠단다. 그래, 집에 가서 엄마에게 얘기해 보렴. 강현이를 안고 있을 때 주연이 눈에 부러움이 묻어났지만, 내 무릎에 앉히기엔 조금 큰 듯해 보여 애써 모른 척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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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웨이

텐트는 산비탈을 따라 줄지어 서 있다. 한 줄의 텐트와 또 다른 줄의 텐트 사이에는 경사진 화단이 있다. 화단에는 들어가지 못하게 밧줄이 쳐져 있다. 다른 모둠의 텐트에 가려면 밧줄을 빙 돌아서 계단으로 가야 한다. 윤승호는 이게 싫었다. 바로 앞에 얼마든지 넘어갈 수 있는 길이 있는데, 왜 돌아가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밧줄을 넘었고, 그 때마다 혼이 났다. 밧줄을 넘어 다닌 아이가 윤승호만은 아니었다. 석주, 지성, 유섭, 해준 등 전쟁놀이를 하던 아이들 모두 밧줄을 수시로 넘나들었다. 그런데 샘에게 혼나고 나서도 버젓이 샘 앞에서 밧줄을 넘어간 건 윤승호 뿐이었다. 돌아오는 날까지도 윤승호의 동선은 언제나 직선이었다. 목적지까지 가장 빠른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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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의 달인 등극

차이나는 만두는 들살림 내내 지기를 바꾸지 않았다. 한 번 밥지기는 끝까지 밥지기. 준호와 정우가 밥지기였다. 쌀을 씻어 와서 불에 올린 다음 진득하게 앉아 불 조절을 해야 하는데, 정우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준호는 자기 대신 자리를 지키게 하려고 정우를 찾으러 가려고 하지만, 그러다 밥을 태울 거냐고 샘에게 잔소리를 듣는다. 준호는 자리를 뜨지도 못하고 코펠 앞에 앉아서 우쿨렐레로 마음을 달랬다. 준호가 시간만 죽인 것은 아니다. 냄비밥을 무려 9번이나 하고 나니, 밥의 달인이 되었다. 언제쯤 불을 줄였다가, 끄고, 뜸을 들여야 하는지 감을 잡았다. 3층 밥이 되었던 건 샘이 중간에 끼어들었던 한 끼 뿐, 나머지는 준호 덕분에 정말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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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방

예니는 틈나는 대로 그림을 그렸다. 자리를 비웠다가 오빠들에게 몇 번 꾸중을 듣더니 그 다음에는 아예 텐트 밖엘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텐트에 작업실을 차렸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짐 속에 종이를 잔뜩 챙겨왔다. 레슨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싶은 사람은 알아서 그리던지 말던지. 그런데 그림을 부탁하면 매우 기뻐하며 작업을 시작한다. 이런 저런 요청을 귀담아 듣는 것 같지만, 그림이 꼭 요구한대로 나오지는 않는다. 예술가는 원래 자기만의 영감을 따라 작업을 하는 거니까. 맘에 안 들어? 그럼 갖지 마. 쏘아붙이는 것도 이미 작가답다. 바닥에 흩뿌려진 종이 덕분에 텐트가 작업실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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