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과정 탈핵 기사글
작성자 : 양사랑 | 등록일 : 2017-11-16 14:14:21 | 조회수 120

 

 

가을하늘과 송전탑, 바다와 원전

양사랑 (7학년)

이번에 16일부터 20일까지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저희 학교는 주제공부라고 하는 수업이 있습니다. 주제를 정해 주제에 대한 공부도 하고 사람들도 만나러 갑니다. 저와 다른 친구들이 이 여행을 준비하는 팀에 들어온 이유는 모두 환경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어디를 갈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6년간 선배들이 밀양에 갔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밀양에 왜 가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선배들이 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밀양에 갔던 이유는 밀양에서 있었던 “송전탑 투쟁” 때문이었습니다. 약 12년간 밀양에 계신 할머니들과 주민들이 밀양에 들어오는 아파트 30층 높이인 765kv 송전탑 건설을 막기 위해 싸우셨습니다. 이미 2014년에 송전탑은 다 건설 되었지만, 아직도 투쟁하시는 분들이 남아 계셨습니다. 그런 분들의 농사도 도와드리고 이야기도 듣기위해, 그리고 그 6년이라는 시간을 잇고 싶었기 때문에 4박5일중 3박4일 동안 밀양에 가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밀양에만 가려고 했었지만, 한 가지 의문점이 있었습니다. 대체 송전탑의 끝은 어디일까? 라고 말입니다. 송전탑의 끝은 전기를 많이 쓰는 수도권입니다. 애초에 서울을 위해 세워진 것이니까요. 그러면 반대쪽은 어디일까요? 반대쪽은 부산 쪽에 있는 핵발전소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밀양송전탑이 투쟁의 원인 뒤에 있는 핵발전소가 어떻게 생겼는지 사진으로만 봐서 실제로 핵발전소를 보고 싶어 핵발전소가 있는 곳도 가기로 했습니다.

아까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저는 이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다른 친구들한테 제가 공부한 내용을 알려줘야 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강의 준비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강의는 저희가 여행을 가서 보는 송전탑과 핵발전소의 대해 하는 것입니다. 저는 송전탑에 관한 강의를 준비했습니다. 먼저 인터넷에서 기사들을 찾아보는데, 밀양할머니 분들이 투쟁을 하시는 영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들이 손자뻘 되는 경찰들 때문에 다치시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런데 그런 영상들의 댓글들을 보면 좋지 않은 말들이 많이 쓰여 있어서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또 책도 읽었는데, 제목이 ‘탈핵, 탈송전탑 원정대’ 라는 책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는 좀 더 밀양 할머니들의 송전탑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과 생각, 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여행 전 날, 대략 3일 정도 남았을 때 아이들한테 강의를 했습니다. 강의 때 쓸려고 만든 ppt를 키고 대본을 읽는데, 다른 아이들이 잘 들어주는 거 같아서 기뻤습니다. 강의는 잘 끝냈던 거 같고 저 자신도 알게 된 게 많아서 좋았습니다. 그 중에서 송전탑의 전자파 때문에 소가 송아지를 못 낳고, 벌이 꽃을 못 찾는다는 점이 충격적이었습니다.

밀양은 기차를 타고 갔습니다. 그 다음 먼저 저희가 밀양에 오기까지 많은 도움을 주신 남어진 선생님이 활동하시는 ‘너른 마당’으로 갔습니다. 너른마당에서는 밀양 송전탑 강의를 들었습니다. 송전탑 1기를 건설할 때 30억이 든다 했습니다. 저는 총 69기를 지으면서 5175억원을 썼다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그 돈을 다른 복지 같은 곳에 썼다면 행복할 수 있었는데, 정부는 계속해서 송전탑을 짓고 핵발전소를 짓는 게 답답합니다.

그리고 밀양에서 했던 또 다른 활동은 저녁간담회 이였습니다. 먼저 저희가 밀양에서 잘 수 있는 공간을 내어주신 조원규 어르신 댁에서 진행을 했습니다. 이제 몇몇 아이들이 만든 요리를 대접했는데, 간담회에 오신 분들이 좋아해 주시는 거 같아서 나름 뿌듯했습니다. 밥을 다 먹고는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오신 분들께서 저희에게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어느 어르신께서는 “이 사회의 희망은 너희다.” 라고 말씀해 주셨고 이 곳에 온 게 너무나도 고맙다고 말해주셨던 게 기억에 남습니다. 또 저도 이야기를 했는데, 긴장이 되어서 이상한 말들을 했던 거 같습니다. 그래도 탈핵이 되고 탈송전탑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으르신들게 했습니다. 간담회를 마무리하고 어르신들이 가시는 걸 보려고 밖에서 인사를 하는데 다음에 또 오라고 하셔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다음에도 또 보고 싶은 애들 이라 생각하시는 거 같으셔서 더 좋았던 거 같습니다.

밀양에서의 마지막 날 에는 진짜 송전탑을 보러 갔습니다. 송전탑은 산에도 있고 논이 있는 땅에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땅에 있는 송전탑을 보러 가는데, 생각보다 너무 가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조금만 걸어가면 엄청난 철탑 하나가 우뚝 서있었습니다. 작년에는 산에 올라가서 송전탑을 봤었는데, 송전탑 옆에는 할머니들의 투쟁 흔적이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땅에 박혀있는 송전탑을 보러 갔습니다. 송전탑 아래에는 황금빛 벼가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을하늘 위에는 기다란 줄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2일 동안 농활을 했습니다. 농활에서 주로 했던 일은 감 따기였습니다. 가을이니 감 따기를 많이 했습니다. 감을 따는데, 감나무가 높아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땄습니다. 하나라도 더 따서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계셨던 분들이 저희가 일했던 양보다 훨씬 더 챙겨주셔서 죄송스러운 마음도 한 쪽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매일 밤마다 자신이 하루 동안 느꼈던 점을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조금 지루하긴 했었지만, 다른 마을로 농활을 갔던 아이들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던 시간이여서 재미있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서로 어떤 점을 고쳐야 하는지 , ‘이런 것은 하지말자’ 이런 이야기들을 했습니다. 조언을 주고받는 시간인 만큼 사무 진지한 표정의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집중해서 이야기 했던 거 같습니다.

밀양에서의 생활이 끝나고서는 부산으로 내려갔습니다. 부산에 가자마자 핵발전소를 보러 갔습니다. 한국은 핵발전소 밀집률 1위인 만큼 저희가 서있는 곳에서 신고리 3.4호기가 보였습니다. 그리고 뒤에는 신고리 1.2호기가 보일 만큼 한 곳에 원전이 많이 붙어 있던거 같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서 있던 곳은 신고리 5.6호기 건설 현장 이었습니다. 작년에도 왔던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작년에 있던 마을은 사라지고 황폐한 땅이 되어있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서토덕 선생님께 강의를 들었습니다. 그 중에서 왜 주민들이 신고리 5.6호기 건설에 찬성하시는 지를 알려주셨는데, 원래는 신고리 3.4호기에 600m 안에 사는 주민들은 모두 이주를 할 수 있도록 돈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까이 사는 건 마찬가지지만, 한전은 이주 작업을 시켜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민들은 신고리 5.6호기가 지어져서 이주 보상 지역이 되면 보상을 받고 이주를 하기 위해 찬성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서 저는 이주를 위해 극단적인 생각을 하신 것이 안타까웠고, 무엇보다 한전이 원전을 짓지 않았더라면 없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다음날은 광명으로 돌아가는 날 이였습니다. 그 때 20일이여서 공론화위원회의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할지 말지 결과가 나오는 날이었지만, 까맣게 잊고 있어서 집에서 뒤늦게 기사를 봤습니다. 그런데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계속한다고 해서 실망과 아쉬움이 올라왔습니다. 비록 신고리 5.6호기는 건설을 진행하고 있지만, 저는 대한민국이 탈핵, 탈송전탑 하는 날까지 노력할 것입니다.

 

 

 

밀양 농활

최이은 (6학년)

안녕하세요. 저희 청소년 과정이 밀양에 농활을 갔습니다. 청소년 과정 중에 밀양 농활을 이번이 3번째인 사람도 있고 2번째인 사람도 있고 처음인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는 밀양 농활을 처음 가는 것이라 약간 긴장도 됐습니다. 가서 방해만 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농활을 하기 전에 남어진 선생님께서 밀양 주민 분들이 송전탑을 막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고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해와 주셨는지를 알려 주셨을 때 저는 ‘나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전기를 쓰고 있어서 밀양 주민 분들이 피해를 보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죄송해졌습니다. 그리고 밀양 주민 분들이 “처음에는 우리 건강을 위해 핵발전소와 송전탑을 막았는데 알고 보니 핵발전소를 계속해서 지으면 밀양만 위험한 게 아니다. 어차피 우리는 오래 살지도 못할 거고 당신들 지켜주려는데 왜 우리를 막는 것이냐”라는 식으로 한전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그 말이 정말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 열심히 농활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잘 못할까봐 걱정했던 이유 중에 하나가 제가 평소에 너무 게을러서입니다. 하지만 저는 다행이도 농활을 열심히 했습니다. 감 따는 일을 했는데 첫날은 손으로 아주 빠르게 땄습니다. 그 일이 재미있기도 해서 빠르게 딸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 일이 재미있지 않았으면 빠르게 하지 못했을 겁니다. 예를 들어 잡초 뽑는 건 쭈그리고 앉아서 숨어서 잘 보이지도 않고 뿌리까지 뽑아야 하는데 뿌리까지 잘 뽑히지 않는 잡초가 싫습니다. 그래서 놓치는 것도 많고요. 하지만 열매 따는 건 커서 잘 보이기도 하고 따는 쾌감 같은 것도 있어 재밌습니다.

농활 할 때 저의 머리 속에는 ‘밀양 주민 분들한테 도움이 되는 게 이렇게 재미있고 잘 되니까 좋다’라는 생각과 ‘빨리 빨리하자. 빨리해서 저 박스를 가득 채우자.’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렇게 농활 첫날을 잘 끝냈습니다. 정말 그렇게 하고 나니까 ‘밀양 주민 분들에게 도움 되게 일을 했다’라고 생각이 들어 뿌듯했습니다.

두 번째 날에도 감을 땄습니다. 이번에는 위에 있는 감을 편하게 딸 수 있는 장대를 사용하였습니다. 전날은 손으로 해서 손으로 따서 빠르게 딸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긴장대로 하려니까 속도가 많이 줄었습니다. 그리고 첫날에 많이 따서 그 때는 감이 많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조금 의욕을 잃었습니다. 그래도 아무생각 없이 따다보니 많이 딴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옆에서 감 따던 형도 하루마침 할 때 내가 열심히 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조금 안심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아직 조금 더 열심히 할걸 이라는 생각에 밀양 주민 분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저는 농활을 하면서 꽤 보람찼습니다. 그리고 밀양 주민 분들도 저희가 가서 농활도 도와드리고 하니까 기뻐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밀양 주민 분들은 저희가 가서 얘기도하고 일도 같이하니까 즐거워 하셨습니다. 저는 밀양 농활에 간 이유가 일손을 도와 드리는 목적도 있지만 가서 같이 대화하고 웃고 하는 이유도 크다고 생각 합니다.

이번에 농활은 정말 뜻 깊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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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경기 2017-12-03 오전 10:28:17

    인정받고 뜻깊게 느끼고 와서 자랑스럽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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