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학사 농사 이야기
작성자 : 이영이 | 등록일 : 2018-11-07 19:27:45 | 조회수 76

                                          일하멍 배우멍

 

                                                                                         볍씨학교 제주학사 이영이

 

우리 밭은 삼천평이에요!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어 제주학사에 중3 아이들이 내려오면 다음 날 아침 모두가 한밭으로 간다. 한밭은 우리가 농사짓는 밭 중 가장 큰 밭인지라 크다는 의미의 한을 붙였다, 한밭은 크기가 3천평인데 누군가 너희는 어떤 농사를 지어? 라고 물어도 대답이 우리 밭은 3천평인데로 시작한다. 그만큼 3천평이라는 숫자가 주는 위압감이 크고 한편으로 자부심도 그만하다. 아마도 너무 넓다고 하는 걸 유난히 강조하고 싶은거라 짐작되니 그냥 듣는다.

3월 3일 즈음의 한밭에는 항상 전년도 늦가을에 심어 놓은 무랑 봄배추(쌍노물)가 푸른 빛을 반짝이며 아이들을 맞이한다. 아이들은 겨울날씨나 마찬가지인 매서운 봄날의 추위에도 시퍼렇게 살아있는 초록의 식물들을 보고 환호할 수 밖에 없다. 무는 쑥쑥 뽑아진다. 배추는 통으로 뽑아오기도 하고 안쪽에 노란 속잎만 잘라 쌈을 싸먹기도 한다. 봄날의 햇살 아래 무를 채 썰어 마당 가득히 널어 놓으면 그것만으로도 반찬 한 가지는 해결할 수 있겠다는 안도감이 올라온다. 쌍노물이라는 토종봄배추는 겨울 내내 제주의 따뜻한 햇살을 받아서인지 달콤한 맛이 일품이어서 그냥 샐러드용으로 먹기도 하고 김치를 담가먹기도 하는데 특히 꽃대를 꺽어 통으로 김치를 만든다. 그걸 제주어로는 동지지라고 한다. 꽃과 꽃대를 먹는 제주의 음식문화가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한번 먹어 본 뒤로는 봄에 꼭 동지지를 담가 두었다가 열무가 나올 때까지 맛있게 먹고 있다. 배추밭에 들어서서 노란 배추꽃이랑 꽃대를 꺽어 먹는 재미가 아주 좋다. 선배들이 후배들의 봄날을 위해 준비해 놓은 무와 배추를 수확하면서 동생들은 언니들의 노고에 고마워진다. 만일 이 무와 배추가 없다면 우리는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 생각만 해도 암담한 것이다. 무조건 돈 들고 슈퍼 가서 장 보기하면 되었던 도시생활과 달리 제주학사는 우리 밭에서 농사한 걸 먹고 살다가 두부라든지 카레 같은 우리 힘으로 어려운 것만 시장가서 사 오기에 한밭에서 겨울을 난 무와 배추, 돼지감자, 상추 같은 야채들은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봄에 가장 먼저 심는 건 감자다. 3천평이라는 끝이 가물가물해 보이는 널따란 밭이지만 감자밭 2백평을 한구석에 자리잡고 보면 시작할 때의 암담한 마음이 조금 안심이 되기 시작한다. 어떡하든 하면 되긴 하겠네, 하면서.....단호박 심을 곳 2백평 쯤, 고추 심을 이랑 몇 줄, 토마토와 가지 같은 열매를 많이 내면 좋을 것은 거름이 듬뿍 내어진 곳으로 가고 요즘 야심차게 심는 바질 밭도 만든다. 5월 중순에 심을 고구마 밭도 대강은 자리를 만든다. 고구마까지 심고 나면 밀은 누렇게 익어가기 시작한다.

한밭은 우리를 일년 내내 먹여 살린다. 밀과 메밀, 언제든 가면 무엇이라도 빈 손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싹이 틔워졌는지 확인차 또는 모종판에 물 주러 잠깐 들러도 언제나 먹어 달라고 하는 작물이 있다. 우리가 키운 작물들도 있지만 일체의 농약을 안하기 때문에 다양한 들나물이 지천으로 깔려있어서 우리의 밥상은 한밭에서 자라는 생명으로 채워진다. 메밀이나 밀, 바질호박즙, 바질페스토, 단호박, 귤은 판매할 정도로 많이 수확한다.

한밭 말고 경밭과 분교밭까지 농사짓는 곳이 많으니 볍씨 제주학사는 농사만 짓는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는 집짓기도 하고 개별적인 공부도 해야 하니 농사만 전념할 수 없어서 1주일을 쪼개어 집짓기와 농사를 병행하는데 공연이나 행사까지 겹져지면 솎음할 때를 놓치거나 풀뽑는 시기를 놓쳐 버리기도 한다. 특히 올해 농사는 공동체 마을에 커뮤니티 공간을 짓느라 농사는 뒷전이었다. 60평짜리 돌집을 짓고 있는데 돌을 하나하나 깍아서 쌓아야 하고 겹담으로 올려야 하니 시간 소모가 많다. 처음 계획은 세 달이면 되겠지 싶었지만 여섯달 째 쌓아올리는 중이다. 예전보다는 소홀했던 한밭 농사지만 지금도 식재료가 떨어져 가면 한밭으로 달려간다. 여전히 호박이며 가지, 노각을 수확해 오고 여전히 빨갛게 매달린 고추들이 있다.

 

텃밭에 부추가 있어서 너무 좋아요.

 

제주학사는 두 사람이 하루 세끼의 밥을 책임진다. 밥을 짓는 건 가마솥에 불을 때서 한다. 불조절을 잘 못해 생쌀을 먹어야 할 때도 있고 삼층밥도 생기지만 점점 실력이 쌓여 불과 물 그리고 쌀의 환상적인 만남을 이루면 노릇노릇하고 바삭한 누룽지가 나온다. 더군다나 누룽지가 가마솥 밑판의 원형모양을 유지한채 고스란히 떨어져 나왔을 때 모두의 환호성이 터진다. 하지만 이 정도로 불을 다루려면 많은 관찰이 필요하다. 초보자일수록 가마솥을 수시로 열어서 쌀이 어느 정도 익었는지를 확인하지만 노련한 아이들은 밥이 지어지는 시간 차에 따른 냄새와 가마솥 뚜껑 사이로 새는 김의 물기와 수증기 정도를 보아가며 불을 넣는다. 불을 관찰하는 건 언제나 재미있는 일이다. 한사람은 가마솥 불을 때고 다른 한 사람은 부엌에서 요리를 한다. 반찬은 국과 반찬 세가지를 만들어 낸다. 어떤 요리를 할건지는 그날 밥지기의 재량이지만 요리의 원칙은 있다. 우리 밭에서 나온 재료를 사용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먼저 먹어야 할 재료가 무엇인지를 살펴서 해야 한다. 들나물이나 채소나물은 필수인제 나물이 많으면 그걸 나물무침 만이 아닌 국에 사용해야 할 때도 있고 전날 밥지기가 쓰다 남은 늙은 호박을 우선 쓰지 않으면 말라 버리니 늙은 호박요리를 어떻게 할지 결정해야 한다. 수확한 식재료는 언제나 쌓여 있지만 어떤 때는 가지가 너무 많고 어떤 때에는 노각이 너무 많다. 또 열무가 많이 나오면 김치 담그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 나물로도 먹지만 그래도 감당이 안되면 말려서 채소가 귀할 때 먹는다. 제주는 봄부터 초여름까지 고사리도 많이 나는터라 고사리 꺽기도 많이 한다. 가시나무 사이에서 굵은 고사리를 발견하는 재미에 꺽을 때 경쾌함까지 고사리 꺽기는 우리를 새벽부터 숲으로 이끈다. 일년 내내 고사리 나물을 먹을 수 있도록 말려두었다가 나물에 육개장에 녹두전 등 실컷 먹을 수 있다. 가지는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채소 중 하나다. 하지만 가지는 요리재료로 아주 훌륭하다는 걸 요리하면서 알게된다,. 처음에는 볶아 먹기만 한다. 그러다가 기름에 계속 볶는 건 너무 단조롭다는 걸 다른 사람들이 요리해 주는 걸 보면서 알게 된다. 어제 밥지기가 가지볶음을 하루 종일 했는데 오늘 나 역시 똑같은 방식으로 할 수는 없으니 고민을 하는 것이다. 요리책도 뒤지며 가지선도 하고 가지전도 하면서 가지요리를 탐구한다. 가지냉채도 괜찮네, 같은 볶음이나 나물도 양념을 달리하면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는 걸 알게 되니 요리의 세계는 무한하구나 하면서 자기만의 특제소스를 개발할 욕심도 내는 것이다, 오늘 아침에는 미역국을 먹었다. 오늘은 들깨를 넣어 끓이다가 떡볶이떡을 잘게 잘라 조랭이떡의 느낌으로 국에 넣은 것이다. 친구 생일이라 특별히 떡을 넣어 봤다는 수현 쉐프의 설명에 아이들은 미역국 남았어? 오늘 미역국 정말 맛있네를 연발했다. 몇 년전 친구들은 미역국에 반드시 매운고추를 넣었다. 미역국에 고추라니 정말 어울리지 않는 재료라고 단정적으로 생각했지만 막상 미역국을 먹어보니 청량감이 좋았다. 식욕을 돋우는 맛이었다. 이렇듯 제주학사에서는 창조적인 요리를 시도한다. 무엇이든 남기지 않고 다 먹는다는 원칙이 있어 간만 맞으면 요리의 조화로움과 상관없이 고맙게 먹어주는 친구들이 있으니 가능한 일이다,

며칠 전 집짓기에 일손을 보태러 오신 부모님이 훈제오리를 갖고 오셨다. 그날 밥지기는 오리요리를 해 본 적이 없으니 어떻게 요리해야 이 귀한(제주학사에서 처음 먹는) 오리고기를 맛있게 먹을 수 있을지 고민이 되었다. 식당가서 먹었던 오리요리를 떠 올려 보니 부추랑 같이 먹었던 기억이 났고 그 친구는 당장 텃밭으로 가서 부추를 잘라왔다. 오리의 붉은 색과 부추의 초록이 대비를 이루며 맛있게 보인다. 거기에 양파를 넣고 볶았다. 결과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리는 기름이 많이 나오는데 부추의 색감과 식감을 살리려니 바삭 구울 수가 없어서 먹는 사람들이 너무 기름지다는 평을 한 것이다. 그럼에도 그날 밥지기는 텃밭에서 싱싱하게 자라는 부추를 잊을 수가 없었던지 내내 부추 이야기를 한다. 오리와 궁합이 잘 맞는 부추를 필요할 때 언제든 가서 잘라올 수 있는 텃밭, “역시 부추는 텃밭에 있어야 해요.”
하루 세끼 밥을 책임진다는 것 만큼 어깨를 묵직하게 만드는 일이 또 있을까? 더군다나 열일곱명의 밥을 해 먹여야 하니 공사장 함바집 만큼 요리양도 많다. 무엇을 해 먹여야 하나라는 고민은 어떻게 해야 더 맛있게 해 먹일까와 같은 말이다. 그런 부담이 크다보니 어떤 밥지기들은 4시반부터 요리를 시작한다. 나중에 숙달이 되고 요리에 나름의 노하우가 생기면 1시간안에 밥과 반찬 세가지를 해 내지만 이른 새벽 어스름을 뚫고 일어나 밥을 짓는 밥지기들은 언제나 긴장을 안고 있다. 그러니 제주학사에 와서 가장 크게 느끼는 건 엄마에 대한 고마움이다. 밥지기 하다보면 밥 먹고 치우면 다시 점심준비, 치우면 저녁 이런 식으로 세끼 밥을 다 해결하고 나면 하루가 다 지난다. 이걸 엄마는 매일 했구나, 하면서 우리 엄마는 대단해! 소리가 절로 나오는 것이다. 그렇기에 방학에 집에 올라가서 하고 싶은 것, 해야 할 것 중 일 순위는 가족에게 밥 해 주기다. 가족에게 일주일에 두세번은 밥을 해 준다. 제주학사에서 많은 양을 하던 습관 때문에 매번 양조절에 실패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농사는 일상에서 경험하는 창조적 행위

 

시작! 예닐곱 명의 아이들이 삽 한자루씩 들고 땅을 뒤집는다. 삽질하는 동안 손과 발의 협응이 조화롭다. 빠르게 땅은 파재껴져 거무튀튀한 속 흙이 나오고 잡풀이 무성한 겉흙은 속으로 들어간다. 처음에 삽질은 남자아이들의 전유물이라 생각해 “삽 잡을 사람!” 하면 주저하기도 하지만 남자아이들이 삽질 해 나가는 뒤에서 풀을 건져내다보면 ‘나도 삽질 할래’ 하는 마음이 올라오기 마련이다. 올해는 중3은 여자아이들 뿐이니 뒤로 뺄 수도 없다. 넷이서 나란히 삽을 잡고 서 있는 걸 보면 여전사가 따로 없다. 삽을 땅에 꽂을 때 부드럽게 훅 들어가는 그 느낌이 아주 좋다. 처음 이 밭은 관행농을 오랫동안 해서 삽이 안꽂혔지만 6년동안 유기농을 해오니 이제는 어느 밭 보다 흙의 느낌이 좋다. 그럼에도 삽질을 계속해 가다보면 난관에 부딪힌다. 제주의 밭은 돌로 가득하다는 걸 잊어서는 안된다. 삽날이 챙 하며 튕겨 나온다. 돌을 파내야 하는데 아무리 파도 파도 끝이 안 보인다. 바위 하나가 땅 아래 박혀 있는거다. 이렇게 운이 안좋은 라인에 걸리면 다른 친구들은 이미 저 앞으로 내달리고 있는데 이걸 파야하나 포기하나 갈등하는데 이상하게도 아이들은 이 돌은 어떡하든 파내고 싶어한다. 그리고 파낸 돌의 크기가 클수록 성취감은 비례하기 마련이다. 삽질은 허리가 아프고 어깨도 아프다. 그래서 몇 번 삽질을 해 나가다 보면 멈추고 싶어지는건 당연지사, 헌데 멈추면 안된다. 나란히 함께 가던 다른 삽질선수들에게 밀려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니 멈추고 싶어지는 힘든 순간 마다 천천히 할까 말까 갈등한다. 오늘 심기로 한 고구마밭은 꽤나 길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 보기로 한다. 쉬지 않고 힘든 고비를 이겨가며 가기로 마음을 먹는다.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자. 마지막 골인지점에서 뒤를 보겠다!’

드디어 도착이다. 뒤를 본다. 내가 삽질해 온 그 라인의 흙이 엎어져 있다. 옆에 작업이 안된 곳과 선명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그때의 쾌감은 삽질하면서 허리와 어깨에 전해 오던 통증을 싹 잊게 해 준다. 자 이제 반대로 가자! 이걸 몇 번 반복하는 동안 밭은 모양을 갖추었다. 누가 이렇게 하라고 한 적이 없다.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않겠다는 다짐이나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심은 스스로의 선택이기 때문에 그걸 성취했을 때 그 아이는 이미 더 이상 아이가 아니다.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둔 것이다. 그 순간은 승리의 나팔을 부는 거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서고 자기 존재가 결코 작지 않음을 느낀다. 그리고 당당하다.

나는 농사일이야말로 일상에서 창조를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현장이라고 생각한다. 삽질이 뭐에 창조냐 라고 생각하겠지만 막상 삽을 들고 땅을 뒤집어 놓는다는 건 땅에 생명을 받을 준비를 하는 일이다. 이것이 새 역사를 이루는 일이다. 고랑을 내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밭을 어떻게 디자인 할지 학기초에 고민하는데 그건 생명끼리의 조화를 이루어야만 한다. 또 씨를 심는 것 보다 더 감동스러운 일이 어디에 있을까? 그 작은 씨앗 하나를 땅에 넣어 두면 자기보다 수만배의 잎과 줄기를 내고 수백개의 씨앗으로 돌아오는데 어마어마한 생명창조에 내 노동이 결정적임을 알게된다. 그 결과 내 몸을 통해 세상의 생명순환고리에 동참하게 되는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다. 사실 모든 예술행위 또한 많은 노동을 통해 이루어진다. 심지어 글쓰기 조차 노가다라고 표현한다. 나는 농사하는 일이 일상에서 신비롭고 아름다운 생명현상을 내 노동을 통해 창조해 내는 멋진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노상 감동할 일이 많다. 감자씨를 땅 속에 묻어두는 그 마음은 그래서 늘 지극하다. 인간과 하늘의 접선이 땅속에서 이루어지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감자씨 노래를 매번 부르며 울컥 해 진다. 농사야 말로 평범한 창조, 일상의 창조, 가장 신비로운 노동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요즘에는 집짓기에 주력 하느라 한동안 밭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 돌쌓기만 반복하다 지친다는 느낌이 들 때 하루 밭에 가서 일하고 나면 몸이 개운해 진다. 마음도 평안을 찾는다. 복잡한 마음이 진정된다. 흙을 만지는 일은 치유적인 효과가 있음을 경험적으로 깨닫게 된다.

 

볍씨는 살림공부를 공부 중 가장 중심에 놓는다. 시간배정이나 교과운영에 있어서 밥살림과 집살림, 옷살림 시간을 우선 배정한다. 제주학사는 밥살림을 살림 중에서도 가장 기본에 두는데 자급의 원칙을 지키려다 보니 그럴 수 밖에 없다. 먹는걸 스스로 해결하도록 하긴 해야겠는데 청소년기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게 밭일이기 때문에 농사를 어느 정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감이 오질 않았다. 농사는 당장에 성과가 드러나지 않는다. 씨앗을 심고 그결과가 나오려면 아무리 빨라도 두어달 지나야 한다. 청소년기 아이들에게 당장에 성취를 느낄 수 있는 집짓기가 함께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 생각에 학교에서 지을 집이 아니어도 어디서든 집짓기를 한다는 정보를 들으면 쫓아가서 우리 아이들도 집짓기에 끼워달라 부탁하기도 했고 어쩌다 보니 필요 때문에 학교 안에서 계속 집짓기를 하게 되었다. 막상 집짓기를 병행해 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집짓기의 성취감도 크지만 밭일 했을 때의 충만함이 더 크다는 아이들의 경험담이 놀라웠다. 농사일도 어떤 일 보다 변화를 매순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삽질이건 풀뽑기건 수확하는 일이건 간에 그 모든 과정에서 어떤 시각으로 이 과정의 의미를 해석하고 확인하는가가 중요한 것이고 무엇보다 몸이 힘들기는 해도 일을 끝내고 나서의 뿌듯함과 충만함, 개운함이 있다. 당장 결과가 완성된 형태로 오지는 않지만 내 노동의 결과로 밭의 모양이 색깔이 바뀌고 씨가 심겨진다는 것 그리고 하늘의 도움으로 싹이 나고 자라나 우리 밥상에 오게 되는 그 놀라운 기적 앞에서 우리는 매번 경외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물론 밭일은 집짓기 보다 힘들다. 체력소모가 크다. 인내심도 더 많아야 한다. 하지만 밭은 에너지 충전소라고 하는 아이들의 표현처럼 집짓기에서 얻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아마도 흙이 주는 에너지가 생명을 키워내는 에너지 파장이 다르기 때문이고 수 만년 동안 농경사회를 유지해 오면서 인류의 유전자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똥은 꼭 집에서 싸야지요. 최고의 퇴비는 우리의 똥!

 

제주학사 친구들은 밥을 많이 먹는다. 열일곱, 열다섯명이 살아도 한달에 백키로의 쌀을 먹어 치운다. 그러니 똥도 많이 싼다. 현미식을 하는데다 채식을 하니 남들보다 더 많은 똥을 싼다. 3월 초 밭에 거름을 내려면 2년전 선배들이 싼 똥거름을 푼다. 똥거름이라니 아이들은 말만 들어도 기겁을 한다. 똥냄새를 맡아가며 일할 생각을 하니 마스크라도 준비해야 할 것 같다. 아주 우울한 아침이다. 하지만 삽을 들어 거름에 꽂는 순간부터 생각이 달라진다. 어제 밤부터 걱정하고 우려했던 마음이 부질없는 일이었음을 알게 된다. 이렇게 부드러운 흙으로 바뀔 수 있다니, 오히려 그동안 시장에서 사온 유기질 퇴비보다 훨씬 냄새도 좋고 느낌이 좋다. 손으로 만져도 아무렇지 않다. 어떤 화학작용이 일어난 걸까? 똥의 신비요, 똥의 기적이다. 사람의 똥이 이렇게 좋은 흙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내 똥이 2년 뒤 후배들에게 선물이 되는 걸 이해하게 된다. 농사에 퇴비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는 우리의 똥거름과 오줌액비를 먹고 자란 마당 가운데 무화과 나무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3년밖에 안 키웠는데도 그 무화과나무에서 수백개의 무화과를 “따 먹었고 지금도 계속 익어서 손님들에게 최고의 무화과 맛을 보여드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열심히 싸고 모아 톱밥으로 덮고 풀을 얹어가며 발효시키는 건 중요한 일과다. 마당에 풀이 많이 자라면 거름을 많이 만들 수 있으니 좋은 일이 된다.

오줌은 오줌통에 똥은 거름간에! 따로따로 분리하는 게 포인트다. 그렇지 않으면 발효가 아닌 썩어서 지독한 똥냄새를 맡아야 한다. 제주학사에 오시는 손님들이 많은데 그중 반 이상의 손님들은 똥, 오줌을 받아내는 과정 때문에 제주학사에 오래 머물기를 포기하고 옆집 가서 해결하고 오거나 참았다가 귀가하는 도중에 볼 일을 처리한다. 하지만 막상 시도해 보면 별것도 아니다. 똥, 오줌이 발효과정을 거쳐 훌륭한 퇴비가 된다는 걸 알면 제주학사에 와서 싸는 행위 만으로도 제주학사의 농사에 기여하게 되고 수세식 변기에서 사용되는 엄청난 물을 절약하니 세상을 이롭게 만드는 작용을 하는 것이다. 순환의 원리를 자연스럽게 터득하는 똥, 오줌 이야기는 언제나 제주학사에 사는 친구들에게는 자랑거리이기도 하다. 누구든 방문하는 사람에게 화장실 사용법을 안내할 수 밖에 없는 순간이 오기 마련인데 변기 없이 텅 빈 화장실을 보면 얼마나 당황하겠는가? 얼마 전에는 외국인이 와서 통역이 제대로 안되었는지 화장실 안에 비치된 쓰레기통에 소변을 보고 가서 되레 우리가 당황한 적이 있기도 하지만 말이다. 똥에 얽힌 에피소드가 많은 제주학사다.

 

노동의 평등성 때문에 더 편안한 밭일

 

다른 일도 마찬가지지만 농사일 역시 혼자 해서는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 3년전 하와이에 가서 밀림을 개척해 토란 농장으로 만드는 일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하와이 사람들이 했던 이야기가 강력하게 기억에 남는다. 옆에서 바라보기만 해도 그 사람은 나름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그 사람 자체가 에너지를 갖고 있어서 존재 자체가 중요하다는 이야기였다. 길고 긴 이랑을 따라 갈 때도 옆에 한 사람이라도 같이 가주는 사람이 있을 때와 아무도 없이 혼자 일을 할 때 기운의 차이가 크다. 그런데 대여섯명 때때로 열명 이상이 죽 늘어서서 같이 이랑을 잡고 나가면 에너지의 흐름이 상승하기 시작한다. 그럴 때 에너지의 생성은 더하기가 아닌 곱하기가 되어 내가 더 이상 나로 존재하지 않고 나의 한계 너머로 안내하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된다. 아이들이 공부하는 “만물은 서로 돕는다”라는 책을 읽고나면 밭일이야말로 최고의 상호부조라고 이구동성 말한다. 그래서 밭일하러 갈 때는 유난히 인원을 체크하곤 한다. 농사짓는 건 가장 평등한 구조를 만든다. 돌집 짓기만 하더라도 일에서 약간의 위계가 만드어진다. 기술이 생기기도 하고 역할분담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니 그 안에서 무얼 해 달라고 요구하는 사람이 생기니 어떤 사람은 중요한 일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하는 돌 찾기나 벽 채움 같은 일은 시시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밭일은 기술이라기 보다는 성실함이 돋보이는 노동이다. 그러니 장애우도 함께 할 수 있다. 제주학사는 발달장애를 가진 친구가 같이 살고 있는데 식당 알바는 할 수 없지만 집짓기나 농사일은 같이 한다. 집짓기에서는 돌 나르기로 역할이 제한되지만 밭일은 무슨 일이든 같이 할 수 있다. 물론 속도에서는 차이가 나지만 그건 충분히 감안하면서 같이 해 나갈 수 있다. 귤밭에 가서 전정가지를 치우거나 수확철에 귤 컨테이너 20키로를 번쩍번쩍 들어 나를 수도 있다. 작년 귤밭 알바가서 유난히 밀림처럼 울창한 귤 나무 사이를 기어다니며 하루종일 열심히 귤을 날랐다. 농장주인이 아주 기특해 하면서 유기농 귤 5박스를 주셨고 그 귤을 본교에 동생들에게 보내졌다. 전날에는 힘들다고 일하기 싫어 우두커니 서 있던 아이 때문에 화가 잔뜩 나서 이런 아이를 보내면 어떡 하냐고 항의하기도 했지만 열심히 일한 아이를 보니 기특해서 농장주도 뿌듯해 했다. 같이 이 아이를 성장시키고 있다는 느낌에 “다음에도 일하러 와”하신 거다. 진짜 장애란 어떤 부분에서 기능수행이 안되는 어려움을 안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에세 주어진 책임을 외면하고 할 수 있는 데도 어렵고 힘들다고 안해 버리는 것이 장애다. 그러기에 농사일을 같이 하면 장애를 가진 친구도 체력이 생기고 꾸준히 실력이 키워지며 일머리가 생긴다. 자신이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도 밭일에서다.

 

내일 비 와요?

 

정보 수집 중에 가장 절실한 건 날씨다. 특히 비가 오는가 안오는가는 우리 활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날씨에 따라 우리 생활의 흐름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날씨가 맑으면 밭일도 집짓기도 할 수 있다. 그리고 빨래도 할지 말지, 내일 비오면 오늘 빨래하려고 마음 먹었던 일복을 하루 더 입고 빨자고 변경할 수도 있다. 비가 오면 밀린 공부를 하기도 하고 공연기획이나 연습을 하기도 한다. 날씨정보에 따라 비 오기 전 씨를 뿌리기도 하고 잡초 뽑기를 하려다 비 온다는 소식에 다음으로 미루기도 한다. 비가 와야 하는데 하는 마음과 비 오면 안되는데 하는 건 밭에서 하는 작업의 성질에 따라 달라지기에 올해처럼 메밀을 심은 뒤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았던 때는 매일 비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래서 108배 할 때 비가 내려줄 것을 기도하면서 절을 하자고 하는 아이들도 있었고 일부 아이들은 물을 떠다 놓고 절을 했었다.

비가 언제 오려나? 기우제를 해야 하나? 이런 표현은 매우 일상적이다. 도시에서는 비오면 우산을 챙기는 정도의 일이었는데 농사를 하다 보니 비에 의해 삶의 구체성이 확연히 달라진다. 이제 비 온다고 해서 우산을 챙기는 일은 오히려 신경 쓸 것이 못 된다. 그래서인지 제주에서 사는 아이들은 유난히 하늘을 많이 관찰한다. 별이 총총하고 구름이 없으면 기상예보에 비가 뜨더라도 내일 비가 안올 것 같은데...하고 맑은 하늘이라도 바람결이 평소와 다른 느낌이 들면 “어, 비 오려나 보네” 하며 빨래를 걷고 말리던 농작물을 거둬 들인다. 도시에서는 하늘 쳐다 볼 일이 없고 더군다나 밤에 별빛을 보며 날씨를 헤아려 볼 일도 없지만 농사를 짓다보니 비가 인간에게 결정적이라는 걸 몸으로 체득하게 된다. 자연ㅇ에서 산다는 건 이렇듯 자연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으며 살 수 밖에 없는 인간존재에 한계와 자연의 섭리속에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한다는 의식의 흐름을 만들어 준다. 그래서 작은 자연의 변화에도 민감해 지며 결국 비가 오면 오는대로 가뭄이 들면 그런대로 받아들이는 걸 연습하는 것이다.

 

먹고 사는 것에 대한 걱정이 좀 줄어 들었어요

 

의외로 아이들은 먹고 사는 것에 대한 걱정이 많다. 앞으로 부모로부터 독립하려면 그래서 내 힘으로 먹고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이 있다. 이는 대안학교에 다니면서 좀 더 자기 삶에 대한 책임성을 요청 받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불과 열여섯 나이임에도 먹고 살 것을 걱정하기에 알바를 해서 돈을 벌어보는 걸 누구나 하고 싶어한다. 아이들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먹고 살 수 있는걸까가 가장 큰 관심이다. 보통 내가 하고 싶은 일은 하고 싶은것이니 그걸로 돈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주학사에서는 농사를 해서 먹고 살다 보니 실제로 돈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 가장 큰 돈은 일주일에 한번씩 가는 목욕비와 기름값 같은 것들이다. 제주는 논이 거의 없다보니 쌀농사는 불가능하지만 나머지 먹을거리는 대부분 밭에서 키워 먹고 밭일 알바 가면 양파니 쪽파, 마늘 같은 채소를 얻어와 먹는다. 또 상품성이 없는 채소들이 밭에 널려져 있으니 언제든 주워다가 먹어도 된다. 동네에서 수시로 채소를 얻어 먹기도 한다. 우리 올레길 텃밭에 키워지는 상추는 모두 우리가 먹는다. 우리 밭에서 많이 나오는 채소는 동네에 나누고 우리가 없는 건 옆집 삼촌들이 가져다 주신다. 바다도 가까우니 해산물도 그런 식으로 얻어 먹는다. 내가 좋ᄋᆞ하는 일을 하면서도 경제적으로 독립할 정도의 힘을 갖는 건 아이들에게 가장 이상적인 미래일터인데 제주에서는 그렇게 살아가는 어른들이 많다. 아이들은 다른 일을 하면서도 텃밭은 꼭 가꾸고 싶다는 말을 한다. 내 손으로 내 먹거리를 책임지는 걸 경험해 보면 자신감이 생긴다. 어떡하든 먹고 사는 걸 해결할 수 있겠다는 것과 농사를 하면서 살면 큰 돈이 없어도 살 수 있겠다는 것이 자신감을 갖게 해 준다. 막연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무얼 하면 좋을까? 어떻게 살아야 나도 좋고 세상도 이롭게 하는걸까 하는 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씨앗 거두기는 농사의 시작

 

11월의 햇살은 씨앗을 거두기에 최적의 조건이다. 호박씨, 오이씨, 팥, 콩, 들깨와 뒤늦게 심어 채종이라도 하게 된 참깨 등 작물의 씨앗과 더불어 각종 꽃씨들까지 마당과 툇마루 곳곳에서 제 몸에 뽀얀 햇볕을 받아 안는 씨앗들은 내년에 심겨질 생명들의 목록이다. 새해에 심을 요량으로 얼마전 여성농민회 추수축제에 풍물공연 하러 갔다가 얻어 온 통통한 붕어초 하나를 애지중지 하며 말리는 광경을 보면 내년 봄 고추농사가 자연스레 그져지는 것이다. 올해 아이들은 고추농사를 잘 해서 작년 이상으로 수확을 거둘 야심찬 계획을 세웠지만 실패했다. 이 실패를 딛고 내년에는 토종고추를 많이 심어볼 생각이다. 또 비자열매와 동백씨앗도 말려서 기름 낼 준비를 하고 있다. 여름에 유채씨를 몇가마 짜서 유채기름을 얻으니 기름까지 내 손으로 농사지어 먹는다는 것이 아주 신기했다. 유채기름 짜 오던 날 아이들은 참기름 냄새처럼 고소하다며 간장넣어 비벼 먹었다.

토종씨앗을 심고 그 씨를 받아 사람들에게 나누기도 하는데 이건 우리가 특별한 사명을 수행하는 것 같은 자부심을 안겨준다. 토종씨앗 중 하나인 갓끈 동부는 콩줄기를 볶을 때 간장 외에 아무 양념을 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충분히 맛나다. 그래서 이 맛을 본 아이들은 갓끈동부는 무조건 많이 심자고 계획에 넣는다. 우도땅콩이나 팝콘을 해 먹을 수 있는 쥐이빨 옥수수처럼 간식거리가 되는 토종씨앗은 더욱 좋아하지만 역시 가장 열광하는 건 토종옥수수다. 대학옥수수와는 다른 달큰한 뒷맛이 아무리 먹어도 질리질 않으니 말이다. 그 달달하면서도 쫀득거리는 맛을 다음해 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게 야속할 지경이다. 그러니 좋아하는 토종씨앗들은 심을만큼 남기는게 아니라 더 많이 남겨두곤 한다. 해마다 심고나서도 씨앗들이 많이 남는 이유는 더 많이 심어 먹고 싶은 마음이 만들어 낸 결과다.

6년전 제주에 내려 올 때 본교에서 심어오던 갓끈동부 씨앗 대여섯개를 소중하게 들고 왔다. 마치 문익점선생이 중국에서 목화씨를 붓통에 숨겨가지고 오듯 하나라도 잃을까 하며 챙겨온 것이다. 대여섯개 씨앗 중 몇 개나 살아남을지 아슬아슬한 마음이었다. 제주에서 농사경험이 없는지라 갓끈동부가 잘 자라줄지 걱정도 있었다. 그래도 그 중 세그루가 자라나 볶음도 해 먹고 채종도 할 수 있도록 힘을 내서 자라주었다. 갓끈 보다 더 길다란 콩줄기를 보는 것 자체도 신기하고 그 맛은 너무 매력적이기에 이 씨앗을 채종하는 건 다른 씨앗들보다 훨씬 더 신경이 쓰인다.

농사의 끝은 채종이지만 사실 채종의 농사의 시작이기도 하다. 그래서 끝이라는 건 곧 새로운 시작임을 씨앗을 통해 배운다. 씨앗을 거두며 각각의 씨앗이 갖고 있는 아름다운 형태와 색에 놀라워 한다. 숱한 생명을 새로이 키워 낼 이 생명의 응집체를 보고 어떻게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그 씨앗들은 곧 우리 아이들이 갖고 있는 생명력이기도 하다. 내재되어 있는 생명의 힘은 가을 햇살을 더 깊숙이 받아 더 큰 기운을 품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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