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자치들살림 후기 - [오~모둠]
작성자 : 김민중 | 등록일 : 2018-06-09 23:02:52 | 조회수 5463

자치들살림 오~모둠 이야기

[정민영, 김건무, 김석주, 유준영, 강새한, 김민석, 김한별, 김주하, 김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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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01. 고난의 행군

   캠핑장에서 하는 자치들살림은 시작부터 쉽지 않다. 배낭과 침낭을 이고지고, 지하철을 갈아타며, 햇볕아래 40분을 걸어서 캠핑장까지 가는 길이 첫 번째 관문. 각자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길이면서 모둠 친구들끼리 얼마나 협력하는지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이다. 아무래도 1~2학년이 더 힘들고 지치기 마련이라 언니들이 얼마나 짐을 나눠들고, 힘을 북돋워주는지에 따라 걷는 속도가 다르다. 또 얼마나 친절하게 동생들을 이끌어주는지를 보면 3박 4일 간 모둠 생활의 평화로움을 예상해볼 수 있다.

   막내 주하는 힘든 기색 없이 잘 걸었다. 발목에 보호대를 차고서도, 오빠들이 뛰라고 소리치면, 그러지 말라고 말리는데 들은 척도 않고 열심히 뛰었다. “허리가 빠질 것 같았다”는 민석이가 가장 힘들어했다. 민석이 짐은 한별이가 대신 들어주었다. 한별이 짐은 새한이가 들었다. 동희샘이 스타렉스를 운전하느라 오~모둠과 함께 걸었던 지훈이도 “온 몸에 힘이 다 빠져나가서 기절할 것 같았다”고 한다. 새한이는 누가 뒤처지기만 하면 쫓아가서 짐을 하나씩 받아왔고, 석주는 늦게 오는 동생들에게 달리기 시합을 하자고 꼬드겨서 앞으로 이끌어왔다. 민영이는 주로 말로 동생들을 이끌었던 것 같다. 다들 힘들었지만 화를 내거나 비난하고, 윽박지르는 일이 없어서 순조로운 출발이라고 생각했다.

 

Episode 02. 승부욕 3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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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둠을 맡았을 때는 미처 몰랐는데, 오~모둠엔 3, 4, 5학년에서 각각 승부욕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3총사가 있었다. 강새한, 김석주, 정민영. 이 녀석들의 승부욕이 어느 정도냐면 게임에서 져놓고도 자기가 이겼다고 뻐긴다. 그냥 말로만 “내가 이겼다!” 하면서 놀리는데, 정말 웃긴 건 그런 수작에 자극을 받아서 씩씩거리고 경쟁심에 불이 붙어서 어떻게 다시 이겨먹을까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이다.

   4호선 대공원역에 내려서 캠핑장까지는 약 2km. 성미 급한 형들은 무거운 짐을 한시라도 빨리 내려놓고 싶어서 발걸음을 재촉한다. 뒤에서 따라오는 동생들에게는 신경 쓰지 않는다. “기다려라, 같이 가야지, 챙겨서 가자.”는 잔소리는 당연히 교사의 몫이다. 그러면 승부욕 3인방은 뒤돌아서서 일단 얼굴을 찌푸리고 소리를 친다. “빨리 와!” 또는 “뛰어!” 그게 챙기는 거냐며 한 마디를 더 하자 그제야 동생들 짐을 받아들었다. 앞뒤로 배낭을 메고, 어깨에 짐가방 하나를 더 걸친 다음 손에는 침낭까지, 땅에 질질 끌릴 정도로 짐을 들었다. 어느새 누가 더 많은 짐을 드나 경쟁을 하고 있다.

 

Episode 03. 소리 없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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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캠핑장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3박 4일 동안 지낼 수 있게 공간을 정리했다. 가져간 빨랫줄이 모둠마다 고르게 나누어지지 않았다. 일단 길이가 되는 줄을 줬더니 준영이가 매러갔다. 아이들이 구해온 줄이 부족해서 세 가닥이 꼬여있는 밧줄을 하나씩 풀었다. 1m 이상 되는 줄을 풀려고 하니 손이 많이 갔다. 한 가닥 잡아서 벌리고, 한 가닥을 그 사이로 빼고, 나머지 한 가닥이 안 따라오게 잡아야 하는데, 두 손으로는 모자랐다. 주하가 지켜보다가 한 쪽을 슬며시 잡는다. 한 번 풀면 가닥의 위치가 서로 바뀌어서 다시 손을 옮겨 잡아야 하는데, 주하가 자연스럽게 알맞은 가닥을 쥐었다. 다음 가닥, 그 다음 가닥을 하나씩 풀어나가면서 보니 주하 손이 척척 따라왔다. 지금 무슨 작업을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자기가 뭘 거들어야 일이 쉽게 되는지도 보인다는 뜻이다. 게다가 어른의 손놀림에 맞춰서 재게 놀리는 손동작도 어색함이 없다. 제법인데?

   세 가닥을 나눠놓고 나서 준영이에게 가보니 빨랫줄을 완벽하게 매어놓았다. 빨래집게와 걸레, 행주, 수세미까지. 적당한 높이의 나뭇가지에 단단히 매인 빨랫줄을 보고 다시 한 번 놀란다. 일일이 물어보지 않고 필요한 일을 적절하게 해낸 준영이가 새롭다. 왜 학교에선 몰랐지? ‘소리 없이 강하다’는 광고가 떠올랐다. 어? 그러고보니 준영이는 작년 자치들살림 때도 같은 모둠이었다. 그리고 그 때도 준영이를 보면서 ‘소리 없이 강하다’는 말을 생각했었다. 빠른 눈치와 예상을 뛰어넘는 일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자치들살림만 오면 준영이를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 왜 학교에선 그런 모습이 안 보이는지 궁금해졌다.

 

Episode 04. 김한별 실종사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별이가 사라졌다. 이수역에서 7호선으로 갈아타야 하는데, 못 내리고 2정거장을 더 갔다. 옆자리 할머니랑 얘기를 나누다가 그랬다고. 똘똘하게 전화를 빌려서 통화를 하고 역무실에 씩씩하게 앉아있었다. 한별이 실종사건은 처음이 아니었다. 모둠 친구들이 놀다보면 수시로 한별이가 사라졌다. 마당놀이가 끝나고 미션을 하러 가려는데 한별이가 보이질 않아서 찾다보면 혼자 계곡에서 놀고 있고, 모두들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다가 다른 곳으로 가려는데 또 한별이가 안 보인다. 흩어져서 사방을 찾아다니는데, 슬그머니 나타나서 화장실에 다녀왔다는 한별, 어디 갈 때는 말을 하고 가라고 하면 “네~”하고서 대답을 잘 한다. 그런데 다음엔 또 그냥 사라져버린다. 마침 2학년끼리의 모임에서는 자기 안에 빠져 있지 말고 주변에 관심을 가지라는 코멘트를 받았다고도 한다. 아무튼 들살림 기간 동안 몇 차례 실종되었던 한별이는 그 때마다 무사히 제자리로 돌아왔다. 마지막 날 지하철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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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05. 모둠장은 어려워

   대나무반 가운데 모둠장을 해볼 사람? 하고 물었더니 서희, 해민, 윤서가 손을 번쩍 들었다. 뒤이어 민영, 동주, 재우가 슬며시 손을 들었다. 민영이는 한 박자 늦게 손을 들었지만 나름 모둠장 역할을 잘 해보려는 마음이 컸다. 계획서와 일정표를 혼자 쓰기도 하고, 식재료 주문서는 집에서 여러 번 계산을 해보았다고 한다.

   자치들살림 둘째 날 공동체놀이 시간. 이어달리기를 한다는 둥 소지품 잇기를 한다는 둥 아이들 사이에 소문이 떠돌았다. 민영, 석주, 새한은 벌써 긴장이 되는 듯 몸을 풀고, 서로 기합을 지르며 힘을 모았다. 특별히 모둠대항 놀이를 하는 시간이니 더 잘해보고 싶었을 것이다. 오~모둠이 모두 모였다. 다른 모둠이 모이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는데 그 사이를 못 참고 오~모둠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하나둘 땅바닥에 주저앉아 모래놀이를 시작하고, 한별이는 말없이 화장실을 다녀왔다. 결국 다른 모둠이 모두 모였을 때 오~모둠만 어수선한 상태였다. 민영이가 아무리 모이라고 얘기해도 잘 듣지 않았고, 하필 건무 기분이 안 좋았는지 자꾸 엇지르는 말을 했다. 결국 설움이 복받친 민영이가 울고 말았다. 동생들이 그제야 놀라서 민영이를 달랬지만, 저 뒤에 가서 혼자 울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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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게 두었지만 민영이 마음이 쉽게 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데려와서 얘기를 해보니 두 가지가 속상하다고 했다. 하나는 모둠장 역할을 잘 해보려고 한 것이 모두 쓸데없었다는 마음이 들었고, 다른 하나는 내가 모이자고 할 때는 말도 안 듣더니 이제 와서 게임을 이겨보겠다고 설치는 애들이 얄밉다, 배신감이 들어서 애들하고 놀기 싫다는 것이었다. 마음은 이해하지만 계속 이렇게 있는 건 안 좋은 것 같으니 다른 방법을 써보자고 했다. 첫 번째는 속상한 마음을 좀 다스리고 감정을 추슬러서 모둠장 역할을 일단 하고, 그 다음에 따로 모여서 둘러앉기를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친구들에게 가서 자기 마음을 설명하고 잠시 혼자 시간을 갖는 것이다. 둘 중에 하나는 해야지, 지금처럼 혼자 울기만 하면 1학년하고 다를 게 없다고 얘기해줬다. 민영이가 두 번째를 선택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의외로 첫 번째를 고르고 눈물을 훔치며 친구들에게 갔다. 그 때부턴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열심히 놀았다.

   공동체 놀이가 다 끝나고 모둠 친구들이 둘러앉았을 때 민영이가 한 이야기는 다른 모둠은 다 모였는데 우리 모둠만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서 속상했다는 것, 그래서 자꾸 얘기하지 않아도 알아서 모이고, 서로 잘 챙겨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Episode 06. 새한이의 성장목표

   “고백신”을 하다가 새한이가 죽었다. 과감하게 달려드는 모습이 새한이답게 보였지만, 조금 무모했다. 민영이, 건무, 석주가 새한이를 밀고 당겨서 결국 발을 땅에 딛고 말았다. 아쉬운 기색이 새한이 얼굴에 스쳤는데, 다음 순간 홱 돌아서더니 건무 다리를 냅다 걷어찼다. 퍽! 그리고 소리를 질렀다. “꼬집으면 어떡해!” 시뻘개진 얼굴로 씩씩거리는 새한이에게 건무는 아무 말도 못하고 슬슬 피했다. 다른 아이들도 새한이 눈치만 보고 있었다. 둘러앉아서 같이 얘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건무가 상황을 객관적으로 얘기할 것 같지 않았다. 빙빙 돌리거나, 딴 소리를 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아무 말도 안 하거나.

   그냥 새한이만 따로 불렀다. 왜 그랬냐고 물으니 건무가 꼬집어서 아팠단다. 그리고선 자기도 잘못했다는 걸 안다고 말한다. 뭘 잘못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놀이를 하다가 실수로 꼬집을 수도 있는데 화를 내며 일부러 발로 찬 것은 자기가 잘못했다고 한다. 놀이에 졌기 때문에 기분이 나쁜 건 아닌지, 민영이와 석주 대신 약하다고 생각하는 건무에게 화풀이를 한 건 아닌지 물었지만 그건 아니란다. 알겠으니, 그럼 새한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것만 건무에게 사과하고 가서 놀라고 했다. 다만 잘 생각해보라고 했다. 혹시라도 그런 마음이 있었다면 그건 정말 나쁜 마음이라고. 앞으로 그런 일이 또 있으면 자기 마음을 잘 들여다보라고 말해주고 보냈다.

   동희샘에게 얘기를 들려줬더니, 새한이의 자치들살림 목표가 두 가지라고 알려준다. 하나는 놀이하다가 승부 때문에 화내지 않기, 그리고 또 하나는 기분이 나쁘다고 몸으로 거칠게 표현하지 않기란다. 들살림을 시작하자마자 일어난 사건에 두 가지가 다 포함되어 있다. 역시 쉽게 되지 않으니까 성장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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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07. 기상은 6시!

   들살림을 떠나서 아침에 잠을 깨우는 건 아이들 떠드는 소리다. 아직은 잠 속에 빠져있는데 밖에선 아이들 소리가 시끄럽다. 눈을 뜨기 힘들지만 날이 밝아진 것 같기는 하다. 벌써 일어날 시간이 지났나? 아직 하룻밤을 지냈을 뿐인데 왜 이렇게 피곤하지? 평소와 비슷하게 잔 것 같은데도 이렇게 피곤한 이유가 뭘까? 아, 늦잠자면 안되는데.. 알람소리도 못 듣고 자버렸네.. 근데 애들은 왜 날 안 깨울까, 밥 준비를 하는 소리도 들리고, 애들은 모두 일어나 있는 것 같아, 조금만 더 자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겨우 눈을 떠 시계를 보니 5시 15분. 아직 1시간은 더 자도 되는데, 이놈들은 도대체 몇 시부터 일어나서 이 소란인거야?

 

Episode 08. 떡볶이는 십시일반

   떡볶이 떡이 두 봉지 들어갔다. 물은 떡이 살포시 잠길 만큼 자작하게 부었다. 어묵도 한 봉지 넣었다. 평소에 국을 끓일 때는 코펠의 반이 조금 넘게 양을 맞췄는데, 떡볶이는 거의 넘칠 지경이다. 아이들 눈에 이건 다 먹지 못할 만큼 많아 보였다. 볍씨 아이들은 음식의 양에 민감하다. 공평하게 나눠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공평은 상황이나 각자의 사정에 관계없이 “똑같이”를 의미한다. 적을 때도 똑같이, 많을 때도 똑같이. 물론 언제나 똑같이 나눠먹기는 힘들지만 많을 때나 적을 때나 서로가 용인할 수 있는 “양심적인 수준”이 존재한다. 떡볶이가 너무나 많다고 느꼈을 때 아이들 중 몇몇은 내가 얼마나 더 먹어야 하는지 계산을 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누군가 “오늘 떡볶이는 무한리필”이라고 외쳤을 때는 각자 먹을 수 있는 양보다 더 먹어야 하는 부담을 줄이고, 먹고 싶은 사람이 최대한 많이 먹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줄을 서서 떡볶이를 뜨는데, 저마다 한가득 떠간다. 가장 큰 그릇을 가진 새한이도 떡볶이를 한가득 떴다. 새한이가 뜨고 나니 무한리필이 가능할 줄 알았던 떡볶이가 바닥을 보였다. 줄의 맨 뒤에 서서 남은 것을 다 뜨려던 석주 얼굴이 일그러졌다. 새한이 뒤로도 몇 명이 더 뜨고 나니 남은 것은 바닥에 늘러 붙은 떡 몇 개와 국물 두 숟가락 뿐. 아이들이 석주 그릇에 떡볶이를 한 개씩 모아주었다. 새한이도 자기 그릇에서 한 개를 떠주려고 하자 아이들이 아우성이다. “양심적”으로 줘야지! 새한이는 입을 삐죽 내밀고, 다들 하나씩 줬잖아! 라며 항변했지만 그건 양심적이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서너 개를 더 주고서야 아이들의 원성을 잠재울 수 있었다. 떡볶이는 무한리필 대신 십시일반이었다.

 

Episode 09. 장사꾼인가, 사기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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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뉴가 두부김치다. 두부는 이미 썰어 놨다. 요리당번이 김치를 볶는데 적어 보이는지 옆에서 자꾸 김치를 더 넣으라고 참견이다. “너희들 김치를 그렇게 많이 먹으려고? 그만 해도 될 것 같은데..” 를 5번 넘게 물었다. 석주가 그 때마다 괜찮다고 말한다. 처음 물어봤을 땐 “더 해도 될 것 같은데,,” 라고 대답하더니 나중엔 “제가 다 먹을 거예요.” 라면서 “더 넣어! 더!” 외친다. 자꾸 말리니까 쓸데없이 오기를 부린다는 생각에 말리기를 멈췄다. 그런데 이미 멈출 수 없는 상태에 왔나보다. 있는 김치를 다 넣을 기세였다. 내일 김치전 메뉴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상기시켜서 겨우 막았다. 그러고서도 아쉬워서 입맛을 다신다. ‘다 먹을 수 있는데!’라는 표정이다. 두부에 올려먹는 김치는 역시 맛있다. 그런데 상당히 매웠다. 몇 개를 집어먹으니 입안이 화끈거렸다. 동생들은 이미 먹기를 포기했다. 아이들이 모두 쩔쩔 매고 있는데, 민영이가 벌떡 일어나서 접시를 들고 간다. 다른 모둠을 돌아다니며 맛있는 김치볶음을 선전했고, 반응이 좋아서 모두 팔고 왔다.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민영이에 대한 평가는 최고 장사꾼과 최고 사기꾼으로 엇갈렸다.

 

Episode 10.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

   갑자기 석주가 울먹이면서 건무와 투닥거렸다. 일단 말리고 자초지종을 들어보았다. 석주 말이, 건무가 갑자기 아무 이유도 없이 자기를 때렸단다. 건무는 억울해하면서 아무 이유도 없는 게 아니었단다. 석주가 민석이를 때리고 괴롭혔기 때문에 자기가 민석이를 보호해주려고 그런 것이란다. 석주는 민석이를 왜 때렸지? 민석이가 자꾸 석주를 “안경 쓴 뽀로로”라고 놀렸다는 것이다. 하지 말라고 여러 번 얘기해도 계속 놀리자 헤드락도 걸고 짓누르기도 하면서 같이 놀았던 모양이다. 민석이는 즐겁게 장난을 치고 있었는데 갑자기 왜 싸움이 되었는지 도통 모르는 눈치다. 석주가 민석이에게 진지하게 부탁을 한다. 그냥 한 두 번 장난은 괜찮지만, 하지 말라고 얘기하면 진짜로 멈춰달라는 얘기다. 민석이가 알았다고 대답을 하고, 건무는 아무 때나 때리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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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석주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왜 그래?” “건무형이 날 깔아뭉개요!” “건무야, 넌 또 왜 그래?” “석주가 또 민석이를 괴롭히잖아요~” “석주야, 왜?” “민석이가 나를 보더니 ‘안경 쓴 뽀로로가 일어났다’ 그랬단 말이에요. 그리고 우린 장난만 친 건데 건무형이 자꾸 날 못살게 굴어요!”

   민석이가 아무래도 석주를 놀려먹는 일에 재미를 붙였나보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했나, 민석이가 늦게 배운 장난질로 석주를 줄곧 놀려먹는다. 석주는 그걸 장난처럼 받아주고 있다. 석주 나름의 형 노릇이다. 덕분에 3박 4일 동안 민석이가 혼자 놀지 않고 형들과 잘 어울려 지냈다. 아이들이 서로에게 고마운 일을 말할 때, 민석이는 조용한 줄 알았는데 장난도 잘 치고 같이 어울리며 놀아서 고마웠단다. 민석이에게나 친구들에게나 좋은 시간이었겠다.

 

Episode 11. 흔치 않은 기회

   서울대공원 야영장에서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장소는 계곡이다. 무릎도 안 잠기는 얕은 물이지만 수영 빼고 모든 물놀이가 가능하다. 올챙이, 송사리를 잡느라 도랑을 치고, 바윗돌을 들추면서 가재를 찾는다. 한쪽에선 보를 쌓아 물을 가두고, 다른 쪽에서는 나뭇잎 배를 띄우고 쫓아간다. 물수제비를 뜨느라 돌멩이도 던진다. 제일 흥분되는 놀이는 역시나 물싸움이 아닐까. 계곡에서 이런저런 놀이를 하다가도 조금 지루해질라치면 어느새 서로 편을 짜서 물을 뿌려대고 있다. 멀리 있는 녀석에게 물을 뿌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돌을 던져서 물을 튀기는 것이다. 큰 돌은 더 많은 물보라를 일으키기 때문에 무거운 돌을 낑낑대며 옮겨서 풍덩 빠트리곤 한다. 그러는 걸 보고 있자니 꼭 돌에 아이들이 직접 맞을까 걱정이 되어 말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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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병에 담은 물을 친구들에게 마구 뿌려대던 새한이가 갑자기 펑펑 울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른다. 누구에게, 왜 그러나 봤더니 시선이 준영이를 향하고 있다. 준영이는 조금 당황하고, 또 조금 난처한 얼굴을 하고 낮은 목소리로 한마디를 툭 던진다. “니가 먼저 물을 뿌렸잖아.” 새한이는 그 말을 듣더니 더 화가 나서 소리를 쳤다. “그렇다고 돌을 던지면 어떡해!” 준영이가 던진 돌에 맞았나보다. 물어보니 그렇다고 한다.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많이 억울해 보인다. 장난으로 물을 좀 뿌렸기로서니 돌을 던져 맞추다니. 둘을 데리고 텐트로 가서 얘기를 나눴다. 준영이는 텐트까지 가는 내내 울먹이더니 앉자마자 흐느끼기 시작했다. 새한이가 물을 뿌린 건 장난이었고, 준영이는 장난으로 복수를 위해 돌을 던졌지만 실수로 맞았다. 준영이는 사과를 하는 대신 먼저 물을 뿌렸기 때문이라며 돌에 맞은 것을 새한이 탓으로 돌려버렸다. 새한이는 돌을 맞은 것도 속상하지만, 제대로 사과를 받지 못하고 책임을 떠넘기는 준영이가 얄밉고 억울했단다. 함께 상황을 하나씩 짚어보니 둘 다 차분하게 끄덕인다. 결국은 준영이가 울면서 사과를 했고, 새한이는 금세 감정이 다 풀려서 사과를 받아주었다.

   준영이가 나름 ‘가해자’의 입장에서 둘러앉기를 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또 새한이가 ‘피해자’의 입장에서 둘러앉기를 하는 것도 드문 일이다. 그동안 새한이가 친구들에게 사과해왔던 일을 그대로 돌려받았기 때문에 앞으로 겪게 될 갈등 상황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준영이는 사건을 크게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지내왔기 때문에 이미 벌어진 일에 대처해본 경험이 적다. 뭔가를 잘못했을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적절한 대응인지 배울 기회가 없었다. 둘 모두에게 좋은 기회였다. 

 

Episode 12. 불침번

   볍씨학교 자치들살림 전통 가운데 불침번이 있다. 10시엔 모두 잠자리에 드는데, 불침번은 친구들의 편안한 휴식을 지켜준다. 짝을 지어 30분씩 돌아가면서 주변을 살피고, 화장실에 가는 동생을 챙겨준다. 안자고 떠드는 친구들에게 조용하라고 얘기하는 것도 중요한 불침번 임무 가운데 하나인데, 불침번을 서면서 더 시끄럽게 떠들거나 손전등 불빛으로 잠을 깨우기도 한다. 어쨌든 다들 잠든 시간에 깜깜한 바깥에서 손전등을 휘두르고 텐트 사이를 오가는 것이 재미는 있을 것 같다. 불침번을 서고 싶은 아이들이 많고, 다들 빠른 순서를 원해서 경쟁이 치열하다. 올해 처음으로 자치들살림을 경험하는 재향샘은 아이들이 잠도 안자면 피곤해서 어떡하나 걱정을 하지만, 12시 넘어서 불침번이 이어진 적은 거의 없다. 잠이 들고 나면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안 일어나기 때문에 깨우던 아이가 지쳐서 그냥 자러 간다. 또는 알았다고 대답을 했지만, 잠결에 대답만 해놓고 다시 잠들어버리기도 한다. 다들 어떻게든 필요한 만큼은 잠을 잔다. 그래놓고 다음날 아침에 왜 나를 안 깨웠냐며, 너 때문에 불침번을 못했다고 화를 내는 아이들도 있다. 불침번 신청자도 들살림 첫 날에만 몰린다. 이튿날부터는 신청자가 확 줄어든다. 올해 3일째에는 딱 한 팀만 불침번을 서겠다고 나섰다. 참, 새한이는 두 번째 밤에 짝꿍인 석주가 안 일어나서 혼자 새벽 1시까지 불침번을 섰단다. 가장 늦게 불침번을 선 기록이다.

 

기억에 남는 3가지 일

한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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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를 그려서 칭찬을 받았다.

공동체 놀이 중 신발던지기를 했는데 내가 골인을 시켰다.

간식으로 사과즙이 나왔는데 맛있었다.

 

새한

건무 형과 싸워서 울었다.

놀이를 포기한 것이 너무 아쉽다.

석주형과 바보콤비 노래를 만들어서 부르고 춤을 춰서 재밌었다.

 

 

주하

마당놀이가 재밌었다.

미션이 힘들었다.

지기는 쉽지도 어렵지도 않았다.

 

민영

김치부침개를 처음 부쳤는데 잘 돼서 뿌듯했다.

떡볶이가 맛있었다.

석주랑 새한이가 싸운 게 기억에 남는다.

 

준영

바보콤비가 너무 웃겼다.

이번 들살림에서 여기저기 많이 다쳤다.

고백신 놀이가 재밌었다.

 

석주

건무형에게 맞은 것이 기억에 남는다.

새한이와 바보콤비를 해서 재밌었다.

떡볶이는 처음에 양이 많아서 무한리필로 많이 먹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새한이가 다 떠버려서 얼마 남지 않았다.

 

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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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형이 나를 잘 도와줬다.

캠핑장에 오는 길이 너무 힘들었다.

바보콤비가 재밌었다.

 

건무

이야기를 나누기 직전에 싸운 일로 삐져서 아무 말도 안했다. 그러나 건무 덕분에 밥과 요리 걱정이 없는 3박 4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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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나눔

자기 전에 모둠친구들이 서로에게 감사한 일을 나누었습니다. 여러 친구들이 돌아가면서 얘기해준 내용을 모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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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하는 씩씩하고 말을 잘 들었다. 또 언니들을 잘 따라서 고마웠다. 처음 자치들살림에 왔는데도 여러번 와본 것 같다. 막내인데도 의젓하고 자기 일을 잘 했다.

 

한별이는 무거운 가방을 들고서도 투정을 안 부리고 짜증도 안내서 고맙다. 같이 이야기를 많이 해본 것이 처음이다. 자기 일을 잘 챙기고 다른 사람에게도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민석이는 원래 느린 줄만 알았는데 빨리 움직였고, 또 친구들과 잘 안 어울리는 줄 알았는데 형들과 장난도 잘 쳤다. 힘들어도 열심히 걷고, 자기 일도 잘 해서 고맙다.

 

새한이는 재밌게 잘 놀아서 고맙다. 짐 정리도 잘 했고, 애들을 많이 도와줬다. 이상한 춤을 많이 춰서 웃겼다. 몸놀이도 잘했다.

 

석주는 민석이와 한별이를 엄청 잘 챙겨줘서 고맙다. 바보콤비 놀이도 재밌었고, 보드게임을 만들어온 것도 고맙다. 건무랑 같이 부모둠장 역할을 잘 해줬다.

 

준영이는 여자텐트 맏언니로 여자 동생들을 잘 챙겨줘서 고맙다. 같이 그림도 그리고 정리하는 것도 알려주고 도와줬다. 책임감 있고 믿음직스럽다.

 

건무는 부모둠장으로 일을 잘 했다. 설명도 자세하게 해주고 동생들을 챙기고, 힘든 일이 있으면 나서서 도우려는 마음이 컸다. 양보하고 배려해준 것이 고맙다.

 

민영이는 모둠장 역할을 잘 해줬다. 놀면서 할 일을 안 할 때 알려줘서 고맙고, 모둠장 역할을 맡은 것 보다 더 잘한 것 같다. 그동안 만나본 최고의 모둠장이다.

 

 

그 밖의 사진들

미션 수행 중

미션.jpg

 

미션에 성공하고 코끼리 열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

마지막날.jpg

 

 

 

 

 

 

 

 

목록
  • 유정아 2018-06-10 오후 5:08:25

    아이들의 자치들살림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네요
    너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역시 아이들은 부모가 바라보는 것보다는 훨씬 어른스럽네요
    함께 나눠줘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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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명순 2018-06-18 오후 7:21:19

    ㅎㅎㅎㅎ
    또 다른 수업의 연장선상...야외에서 벌어지는 현장체험이라서 더더욱 유쾌,통쾌!!
    아이들이 다시 가고 싶은 들살림일 것 같아요!!
    재미있네요 ㅎㅎㅎ
    모두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모둠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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