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볍씨학교 교육과정) 볍씨교육과정의 맥락 이해하기
작성자 : 이형광 | 등록일 : 2016-01-29 22:57:11 | 조회수 3158

볍씨학교 교육과정을 푸는 고리

 

1. 넘나들기 : 통합과 통섭

우리는 평생 배우면서 살아갑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 배움은 명확하게 ‘수업’이라는 형태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친구와의 갈등, 결혼 생활 안에서 겪는 일들, 새로운 직업에 도전하는 것 등 수많은 배움 속에서 살게 되지요. 그런데 유독, 어린이 시절에는 그 배움이 이런 형태로 나타납니다. 정해진 학교 속 “수업”에서 “지식”을 배우지요. 그렇게 익힌 “지식”은 내가 살아가면서 유용하게 사용하기도 하지만... 그냥 “지식”으로만 끝나기도 합니다.

볍씨에서는 삶과 배움은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아,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는 이게 중요하구나!’라는 앎을 어린 아이들은 삶 속에서 깨우쳐 갑니다. 이것이 중요해라고 백 번 말해도 그게 실제 배움 속에서 실현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니까요.

이렇게 삶과 배움은 하나이기에, 우리가 지내는 일상의 생활과 학교에서 지내는 생활은 삶의 형태와 같아야 합니다.

 

1) 연령 통합

살면서 한 연령만 따로 떨어져 지내게 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직장에서도, 동네에서도 여러 연령의 섞여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단지 학교에서만 동일연령으로 지내게 되지요.

동일 연령 집단에서 우리는 평균을 이야기합니다. 10살이 모인 집단에서 평균을 기준으로 그 이상과 이하가 있습니다. 평균과 평균 이상일 때는 문제가 없습니다. 어떠한 집단에서도 만들어질 평균 이하에 있는 아이들은 다릅니다. “똑같은 3학년인데, 왜 쟤는 저렇게 하는데 우리 아이는(나는) 저렇게 못하지?!” 비교치로 인해 힘들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요.

사람이 자라고 익히는 속도는 모두 다릅니다. 평균이라는 이름으로 비교해서 잘라낼 필요가 없습니다. 아이 스스로도 자존감을 떨어뜨릴 필요가 없고요. 여러 연령의 아이들이 함께 모이면 자기가 원하는 속도로 배우고 자라는 영역이 넓어집니다. 빠른 아이들은 빠른 대로, 느린 아이들은 느린 대로. 완충지대가 늘어나는 셈이지요.

여러 연령의 아이들이 함께 지내면 공동체 안에서 여러 가지로 소통하는 방법도 익힐 수 있습니다. 사회에는 언제나 여러 연령의 사람들이 섞여 있습니다. 여러 연령의 아이들이 언니 동생들과 함께 지내면서 서로 상호작용하고 언니는 언니 역할을 하면서, 동생은 동생 역할을 하면서, 또 동갑내기와 지내면서 함께 사는 방법을 익혀갑니다. 역할을 수행하면서 배워가는 것들도 많습니다. 또 그 역할은 언제나 변화하기에-올해는 반 안에서 언니 역할을 하지만 내년에는 동생 역할을- 부족한 부분은 채워지고, 시행착오를 계속 해나가면서 더 성장하게 됩니다.

그래서 볍씨에서는 동일 연령의 아이들로 반이 구성되어있지 않습니다. 비슷한 연령의 아이들이 함께 생활합니다.

2016년 현재는 1~3학년 / 4~5학년 / 6~8학년 / 9학년으로 생활반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생활반 뿐만 아니라 연령을 넘어선 여러 가지 주제의 모임(수업) 역시 함께 꾸려집니다.

 

2) 교과 통합

우리 삶에서 지식은 따로따로 떨어져있지 않습니다. 수학만 따로, 국어만 따로 지식을 사용하진 않습니다. 옷 한 벌을 만들기 위해서는 천을 고르는 미적 안목, 천에 대한 이해, 소근육 발달, 옷본을 만들기 위한 수학적 능력 등 수많은 능력과 지식들이 함께 사용되지요. 천연 염색과 화학염색, 패스트 패션 등 인문 사회학적 접근도 가능합니다. 옷 한 벌을 만드는 활동 안에 여러 가지 이야기와 여러 가지 지식(과목)들이 존재할 수 있는 셈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이 모든 내용들을 뚝뚝 떨어뜨려 “수학” “국어” “사회” 등의 분절되고 파편화된 형태로 배워왔습니다. 볍씨에서는 이렇게 분절되고 파편화된 배움이 아닌, 온전한 배움을 이루어나가기 위해 연령 통합과 더불어 교과 통합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3) 장애・비장애 통합

아이들은 다 다릅니다. 생김새도, 키도, 몸무게도, 기질도, 몸∙마음∙생각 각 영역의 능력치도, 발달 속도도, 유전 요인도, 가정의 문화도, 경제적 여건도, 지금까지 겪어온 경험도, 심리정서적 특성도 천차만별. 같은 아이는 하나도 없습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자기 나름의 장점과 단점, 뛰어난 점과 힘든 점을 갖고 있습니다. 개별 성향의 측면에서 아니면 성장 시기나 주변 환경의 변화에 따라서 그중에 어떤 모습이 부각되기로 하고 축소되기도 할 뿐, 결국 모든 아이는 빛과 어둠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사회는 어떤 아이들에게 ‘○○장애’라는 꼬리표를 붙입니다. 아이에 따라서 가정의 분위기와 상황, 이전의 경험이나 교육 현장에서의 요구 때문에, 그런 꼬리표를 달기도 하고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움직임이 많고 아주 활발하고 발산하는 에너지가 강한 아이’ ‘분노를 조절하는 힘이 약한 아이’ ‘학습 속도가 느리고 생활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아이’로 묘사되는 것으로 그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ADHD' ’ODD' '정신지체‘로 진단을 받은 아이가 있습니다. 서로 비슷한 성향과 발달 능력을 보이는 아이인데도 말이지요.

볍씨는 아이들을 진단명이나 외면적인 모습에 의해서가 아니라 실제 만남을 통해서 이해하고 서로 배워나가는 공간이고자 합니다. ‘다름’을 우리 사이를 가르는 경계로 삼지 않고 더 배울 수 있는 영역으로 받아들이는 것, 포용하고 소통하는 과정을 소중히 여깁니다.

볍씨엔 장애아이만을 위한 특별한 교사나 공간, 교육과정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이 진정한 통합을 방해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통합이 ‘똑같이’를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다 다른 아이에게 일률적인 접근, 교육 방식은 오히려 폭력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교사들은 연초에 아이 하나하나를 살피며 개별적인 목표와 주안점, 작용 과정을 상정하고 교사회 안에서 함께 검토합니다. 장애가 있는 아이도 그 안에 있고 같은 맥락에서 교육과정을 실행해갑니다.

 

2. 스스로 : 자발성과 자치성

1) 교육과정 변화의 배경

‘배움이 일방적이어서는 안 되는데’ 하는 생각 때문에 아이들과의 생활을 계획하면서 고민되는 것은 ‘내가 주고자 하는 것’과 ‘아이들이 배우고자 하는 것’ 사이에 일치되는 지점을 어떻게 찾아야 할까 하는 부분이다. ‘나는 이것을 말하고 싶은데 아이들은 이것을 배우고 싶어 할까? 아이들은 저걸 하고 싶다고 하는데 나는 아직 그것이 때가 아니라고 느껴진다면? 얘가 배우고 싶어 하는 것하고 쟤가 배우고 싶어 하는 것이 다른데 그것은 어떻게 하지?’ 때때로 아이들에게 엉뚱한 짓을 하고나 있는 것은 아닌가 불안하다.

그런 걱정에 대항해서, ‘이번 학기에는 뭘 배우면서 생활할까’ 아이들하고 이야기를 나눌 때 나오는 얘기들이 전 학기에 한 것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을 보면서 ‘내가 열심히 하는 게 우리의 최선이다.’ 라고 안위하기도 한다. 하지만 마음 한 귀퉁이에는 여전히 ‘아이들이 배울 때가 되었을 때 배우고 싶어 하는 그 때 즉시즉시 그러한 배움들을 던져줄 수 있다면-. 내가 부족하기 때문에 먼저 뭔가를 계획하고 미리 준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배움의 자리를 채워줄 수 있다면-. 그런 나, 또는 볍씨 안에서 그런 구조가 된다면-.’ 하는 맘을 품게 된다.

- 조순애 선생님의 글 중에서

2016년으로 볍씨는 16살이 되었습니다. 학교를 세웠던 초창기에는 우리가 하고자 했던 교육의 목표와 가치, 그리고 그것을 담아낼 수 있는 문화와 (교육)과정을 고민하고 만들어내던 시기였습니다. 그렇게 5-6년을 보내면서 기본적인 과정과 문화가 만들어졌고 이후로는 그 과정을 다지는 시기였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초창기의 역동적이고 주체적인 모습보다는 수동적이고 안주하려는 모습이 조금씩 조금씩, 군데군데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학교가 가지고 있는 무서우리만큼 크나큰 관성. 그것에서 볍씨도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더 이상 배우고 싶은 게 없었고 학교에서 짜여진 교육과정을 당연스레 받아들이는 것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말 잘 듣는 모범생보다는 이리저리 들쑥날쑥 해도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꾸리기를 바랐던 애초의 기대는 조금씩 사라져 가고 있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무엇이 변해야 할지 잘 몰랐지만 배움을 고리로 둔 학교에서 교육과정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시작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2012년 11월부터 자기 배움계획을 토대로 볍씨는 전면적인 교육과정의 변화를 시작하였습니다.

 

2) 변화된 교육과정의 핵심

모든 배움은 나로부터 시작합니다. 바깥에서 주어진 배움은 그 목적이 상실되는 순간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곤 하지요. 그래서 이 교육과정의 핵심은 자발적 욕구에서 배움의 시작을 잡는 것입니다. 그 욕구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무엇을 얻기 위함인지 욕구에 대한 점검과 확인을 거친 후 세밀하게 과정을 짜고 완성도 있는 결과물을 내는 것이 변화된 교육과정의 목표입니다.

기본적인 큰 틀은 우리가 흔히 상상하듯 일방적인 시간표가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가 구성하는 시간표입니다. 물론 이 과정은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기에 아이들도 어려워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교사의 제안과 아이 스스로 기획하는 배움 내용이 함께 짜여집니다. 스스로 동기를 가지고 시작하는 것만큼 훌륭한 촉매제는 없기 때문이지요. 교사는 이 과정에서 각자 개인의 동기로 시작된 배움 활동이 구체적으로 실행될 수 있게 진행과정을 함께 도와줍니다. 각자가 계획하고 선택한 모임들과 함께 반에서 진행하는 배움들이 엮이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배우는 시기도 연령에 따라 조금씩 다르고, 배움의 내용들도 달라집니다.

교육과정의 핵심을 아주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무엇을 배울 것인지 아이들이 선택합니다. 아이들의 자발적인 욕구에 기초해서 배움의 주제를 선정합니다. 이것은 학습을 시작하는 강력한 동기입니다. 수업은 교사가 준비해서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직접 만들어가지요. 내용, 방식, 평가까지도 함께 의논해서 결정하는 주도적인 학습이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학습에 대한 의욕을 지속시키는 힘이 됩니다.

처음 잡은 주제에서 시작해서 교사와 학생의 작용에 따라 다양한 내용을 수업 안으로 들여와 다룰 수 있습니다. 아이들의 즉흥적이고 자연스러운 욕구에 따라 배움이 일어나기 때문에 수업시간이 정해지기 어렵지요.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연장이 가능합니다.

새로운 교육과정은 아이들이 교실에서 배울 것은 내용이 아니라 배우는 방식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미 진부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정보는 넘쳐나고 있으며 하루가 다르게 쌓여가고 있지요. 그 많은 것을 모두 배울 수는 없는 일이고요. 수많은 정보들 가운데 나에게 필요한 것을 고르는 능력, 그리고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일반적으로 교사는 “수업을 계획할 때 교육적인 목적을 분명하게 가지고 있으며, 의도해서 [내용]을 구성하고, 전달하기에 적절한 방식을 선택해서 수업을 진행”합니다. 볍씨학교에서 아이들이 배워야 할 것은 수업의 [내용]을 넘어서 교사가 “수업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각 단계”입니다.

학습의 전 과정을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것, 그 과정을 보고 배운 아이들이 자라서 자신에게 필요한 학습을 설계하고 조직할 수 있게 몸에 익히는 것이 새 교육과정의 가장 중요한 목표입니다. 이렇게 이루어지는 수업 안에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배움의 주인이 되고, 주인의식을 가지고 배움에 몰입할 수 있겠지요.

 

3) 교사의 역할

교사는 학습설계와 진행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옆에서 돕는 조력자 역할을 하게 됩니다. 수업은 교사가 모든 것을 준비해서 먼저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에 따른 대답을 통해서 만들어나갑니다. 전통적인 의미의 수업이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나가는 활동의 형태가 되겠지요.

또한 교사는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실행과 평가, 보상 등의 행동을 선보임으로써 아이들의 역할모델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교사의 질문과 제안, 조언을 통해 학생의 학습이 설계되고, 그 과정은 곧 학생이 자기 학습을 조직하고 설계하는 연습이 됩니다.

교사는 아이들이 새로운 배움을 접할 때 먼저 목적이 무엇인지, 어떤 목표를 잡을 것인지, 왜 그것이 필요한지, 어떤 방식을 사용할 것인지, 누구에게 어떤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지, 평가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을 질문해줍니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반복해서 이런 과정을 거치게 되면 나중에는 아이들이 필요할 때 교사의 질문을 떠올려가면서 스스로 학습을 조직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3. ‘나’ 가꾸기 : 자기 성찰과 수련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이 더욱 자유롭게 자기를 실현해나가는 과정의 시작입니다.”

광명YMCA와 볍씨학교의 교육이념은 생명이 소중한 세상, 생명이 자유로운 세상입니다. 나와 더불어 다른 생명들을 소중하게 여기며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바람이 들어있지요. 이러한 바람은 교육과정 전반에 걸쳐서 담겨 있습니다.

볍씨학교의 아이들이 자유로운 생명으로 자라날 수 있는 바탕에는 자기 스스로에 대한 깊은 탐색이 있다고 믿습니다. 자유와 자기성찰이 무슨 관계가 있냐고요?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는 규제와 억압이 없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자유’라는 말을 생각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하고 싶지 않은 것은 굳이 하지 않아도 돼.”

“싫은 것을 억지로 해야 할 필요는 없어.”

‘자유롭다’는 말에 잘 맞는 말들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볍씨학교에서 바라고 얘기하는 자유는 의미가 조금 다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는 소극적인 의미에서의 자유를 뜻합니다. ‘속박하지 않음’을 뜻하는 것이지요. 그런 면에서 본다면 볍씨학교의 생활은 언뜻 자유롭지 않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학교에 들어와서 생활하다 보면 하지 말라는 것은 왜 이렇게 많은지, 자발성과 주체성을 존중한다는 학교가 맞나 싶은 생각이 들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을(때로는 부모님들까지) 구속한다는 말도 나옵니다.

우리는 보다 넒은 의미에서 아이들이 자유롭기를 바랍니다. ‘자유’라는 말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해석을 합니다.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 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을 때, 진정으로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봅니다. 하기 싫은 것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얼핏 보기에 크게 다른 것 같지 않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차이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일을 도모함에 있어 외부에서 오는 걸림이 많은 것 같지만, 진짜 걸림은 자기 안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어려움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각자 어려움을 느끼는 지점은 다르지요. 누군가는 새로운 것이 두렵고, 누군가는 익숙한 것이 싫습니다. 또 누군가는 실패가 두렵고, 누군가는 관계를 어렵게 생각합니다. 각자의 고비는 결국 각자의 한계입니다. 한계를 넘어 마음껏 자기 뜻을 펼쳐낼 수 있으려면 자기 안의 걸림돌을 넘어서는 것이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아이들이 각자 가지고 있는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자기 안을 들여다보도록 합니다. 각자 어느 지점에서 어려움을 느끼는지 확인해야 그것을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지요. 어떤 경우에는 고비를 고비로 느끼지도 못하고 ‘그저 싫을 뿐’이라고 생각하며 지내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고비 또는 한계는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을 통해 드러납니다. 화를 낼 때, 책임을 회피할 때, 일을 할 때, 또는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을 때.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이것을 갈등상황이라고 본다면, 갈등이 일어났을 때 자신이 어떤 감정에 휩싸여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감정의 뿌리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지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찾아보는 것이 그 다음 단계입니다. 다양한 상황에서 자기감정과 말, 행동을 짚어보면서 반복되는 유형을 확인하게 됩니다. ‘내가 이렇게 하고 있구나!’, ‘안 그래도 되는데’

갈등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그렇게 느끼지 않아도 된다면, 그렇게 말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렇게 행동해야만 하는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면 이제는 바꾸어볼 차례이지요. ‘이럴 땐 어떻게 하는 게 더 좋을까?’ 나와 다른 사람에게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방향으로 자신의 말과 행동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은 혼자서 해내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버릇처럼 나오는 말과 행동을 스스로 알아차리기 어렵지요.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주변의 도움을 받아 가며 자기를 들여다보는 것이지요. 도움은 교사에게서 오기도 하고, 친구들에게서 오기도 합니다.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이 일러주는 거예요. 스스로 감정에 휩싸여 있으면 자기 자신을 알아차릴 수 없으니까요. 주변에서 친구들이나 교사가 “너 방금 이렇게 했잖아.” 라고 말해주면 그 때 다시, “아, 내가 그랬구나.”하면서 한 발 떨어진 눈으로 상황을 바라볼 수 있지요. 이렇게 보면 자기 성찰은 결국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할 수 있겠네요.

 

4. 볍씨, 지역학교를 꿈꾸다

볍씨학교를 이야기할 때 꼭 나오는 설명은 지역학교를 꿈꾼다는 말입니다. 볍씨학교는 생협 활동을 하면서 지역과 교육을 고민하던 광명YMCA 회원들이 참된 교육을 꿈꾸며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2013년도 터다지기 한마당의 주제는 “조선팔도에 놀지 못하는 아이가 없도록 하라.”였습니다(터다지기는 매년 주제와 목적에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볍씨학교의 가족들의 잔치이자 볍씨터전을 위한 행사입니다). 볍씨학교 뿐만 아니라 지역의 아이들과 시민들을 위한 놀이와 축제를 열었습니다. 볍씨학교의 터전은 볍씨라는 울타리 안이 아닌 지역과 함께 소통하면서 확장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은 다시 말해서 볍씨학교의 부모님들은 내 아이만의 부모가 아니라 지역의 모든 아이들을 위한 부모, 그러면서 지역의 건강한 시민인 부모가 되고자 하는 의미의 ‘사회적 부모’를 꿈꾸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볍씨학교가 지역학교를 꿈꾼다는 것은 비단 시작의 역사만이 아니라 현재의 노력인 것입니다.

그럼 볍씨학교의 교사와 아이들 그리고 볍씨학교의 교육내용은 어떨까요? 광명시라는 지역에서 책임 있는 한 시민으로서 배우고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볍씨학교에는 지역에 대한 배움 내용이 교육과정의 중요한 부분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1) 지역을 교육과정으로

저학년 친구들은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동네탐방을 합니다. 내 친구가 자주 노는 놀이터가 어디인지 가보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물건들을 파는 상점을 소개도 하다보면 평범했던 마을에 새로운 이야기가 담깁니다. 또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지역 기관들을 돌아다니기도 하며, 공원이며 들과 산으로 다니며 마을 곳곳을 내 집 앞마당인 것처럼 뛰어다니며 놉니다.

고학년 친구들은 지역에서 여러 일들을 하고 계시는 분들을 만나서 그 분들의 삶의 이야기나 활동 이야기를 듣기도 합니다. 또한 지역에서 열리는 문화공연도 관람하고 공연에 직접 참여해서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지역사람들과 나누기도 합니다.

청소년 과정의 친구들에게는 학교라는 배움이 틀이 너무나 좁다고 느껴집니다. 그래서 보다 적극적으로 학교가 아닌 지역과 세상을 배움터로 확장시키고 있습니다. 지역에서 만나는 어른들이 좋은 멘토로서의 역할을 해주시기도 하고, 지역에서 열리는 다양한 강의와 행사에 아이들이 직접 참여하면서 배움을 확장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인권에 대한 배움을 진행하는 것보다 장애에 대한 이슈를 장애를 가진 분들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 나눠보고, 여성과 노인의 이슈를 다양한 연령과 경험의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더욱 생생하게 배우기도 합니다. 모든 아이들이 행복하게 교육받을 권리가 있음을 알리는 교육기본권 운동을 직접 나서서 지역에서 펼치는 등의 미래만이 아닌 현재의 책임 있는 시민으로서의 활동도 해나가고 있습니다.

볍씨에서는 아이들의 배움이 지역과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열심히 배우고 만든 요리로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께 점심 대접을 하고. 우리가 배운 음악을 잘 구성해서 동네 어린이집, 노인정, 복지관 등에 찾아가 공연을 하고 함께 즐깁니다. 우리가 배운 것들을 지역에 펼쳐내면서 함께 살아가고자 합니다. 우리의 배움이 단순히 나 자신, 우리만을 위함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아이들이 몸으로 익히길 원합니다.

그래서 볍씨의 모든 교육과정은 여러 가지 형태로 지역과 함께 자연스럽게 연결되기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2) 지역의 일꾼으로

이렇게 마을에서 자란 볍씨의 졸업생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자랑스럽게도 볍씨를 졸업한 18살부터 20살 초반의 친구들 중 몇 명은 <언니에게 한 수 배우다>라는 청년사업단을 꾸려 광명시에 있는 지역아동센터를 통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마을에서 배운 것들을 다시 마을에서 나누며 일한다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는 것이지요. 2014년 7월에는 국제민주교육한마당(IDEC)을 기획하고 진행한 바 있습니다. 이렇게 지역에서 교육을 주제로 다양한 활동하고 있습니다.

 

3) 대안학교 교사이자 지역활동가로

볍씨의 교사는 광명YMCA의 활동가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사가 광명시의 건강한 시민으로서 활동하는 삶을 살고 그것을 아이들과 나누는 것, 그 안에서 진정한 배움이 일어나리라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대안학교에서 교사를 하는 것은 더 좋은 교육, 더 좋은 세상을 위한 ‘교육운동’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방학 때가 되면, [계절학교]와 [계절캠프]라는 이름으로 지역의 아이들을 만나고 있답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지역의 활동들에 참여하고, 지역 이슈에 관심 가지며 우리의 역량을 지역에 환원할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대안교육은 다양한 아이들의 다양한 강점을 발견해내는 교육이라고 말합니다. 다양한 강점을 살려내는 교육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많은 자원을 가지고 있는 마을이 배움터가 되어야합니다. 또한 아이들이 자라는 지역이 건강해야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볍씨학교가 학교라는 이름의 또 하나의 고립된 섬이 아닌 지역과 소통하는 열려있는 지역학교가 되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바람이겠지요.

 

5. 생활 문화

1) 자치

볍씨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모두가 모여 둘러앉습니다. 볍씨에서는 이것을 나눔마당이라고 부르는데요. 1학년 볍씨 막둥이부터 9학년 큰 언니, 오빠들이 모여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함께 결정을 내립니다. 볍씨의 모든 아이들과 선생님이 모여 이야기 한다고 해서 아주 큰일들만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눔마당에서 나눠지는 이야기들로는,

“어린이과정에서도(8세~12세) mp3를 사용하고 싶은데 이야기를 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화장실에 냄새가 너무 나니 화장실 청소는 제대로 해주세요.”

“샤프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해봅시다.”

“우리 요즘 서로 너무 인사를 안 하는 것 같은데 이야기 해 보았으면 합니다.”

와 같은 것들입니다. 아주 사소한 것들로 한 시간 삼십분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때로는 이야기를 해도 끝이 나지 않아 몇 달간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때도 있습니다. 전체 나눔마당에서 이야기하기가 힘든 경우에는 그 주제를 반 나눔마당에서 다시 토론하고, 전체 나눔마당에서 나눕니다.

나눔마당에서는 다수결의 원칙이나 투표와 같은 의사결정 방식은 없습니다. 아이들은 서로의 의견을 듣고, 묻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사고를 배우게 되고 남의 의견을 배려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가 그 문제에 대해 충분히 논의했고 함께 선택한 것이 ‘우리의 결정’이라는 것을 아이들은 압니다.

 

2) 갈등해결

교실현장에서 갈등 상황은 수시로 발생합니다. 이 갈등 상황은 나눔마당의 이야깃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볍씨에서는 수시로 일어나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갈등이 생기면 모든 활동을 멈추고 둘러앉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 자리는 잘못을 추궁하기 위한 자리가 아닙니다. 명명백백 시비를 가리기 위한 자리도 아닙니다. 각자의 감정을 나누고, 공동체 안에서 서로 좋은 방법들을 찾아나가기 위한 자리입니다.

교실 안에서 두 사람이 갈등이 생겼습니다. 그러면 보통은 두 사람만 이야기를 나누곤 하지요. 하지만 볍씨에서는 이 일을 두 사람만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생긴 일이고, 두 사람의 갈등은 전체 구성원들 분위기와 관계에 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또한 갈등과 다소 떨어져있는 친구의 객관적인 시각은 두 사람이 갈등을 풀어나가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교실 구성원 수가 적으니 사회성이 떨어지지 않을까요?” 라는 질문을 받곤 합니다. 하지만 많은 인원 속에서 피상적으로 인간관계를 맺으며 지내는 것과 적은 인원이지만 모든 인원이 서로 갈등을 겪고 소통하며 진한 인간관계를 맺는 것. 어떤 차이일까요? 볍씨는 이렇게 공동체 안에서 갈등을 해결하고 소통하는 방법을 익혀나가는 것을 지향합니다.

 

3) 식문화

볍씨의 아침풍경은 1학년부터 9학년까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몇몇은 빗자루를 들고 있고 몇몇은 컵을 씻을 준비를 하고 있고 몇몇은 밥통에 쌀을 붓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은 지기활동을 하고 있는 것인데요. 청소지기는 교실과 학교의 묵은 때를 깨끗하게 닦아내 우리의 하루 배움을 이어갈 수 있게 하고, 설거지 지기는 사용할 그릇을 깨끗하게 닦아냅니다. 밥지기를 맡은 아이들은 반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양을 고려해 아침에 밥을 짓습니다. 때로는 물이 너무 많아 죽밥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물을 너무 조금만 넣어 꼭꼭 씹어 먹어야 하는 밥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말 합니다. “밥지기! 내일은 물 더 많이 넣고 해라!”

우리가 쓰는 것, 우리가 지내는 곳은 스스로 돌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아침마다 우리는 이러한 일들을 합니다.

밥지기가 아침에 해 놓은 밥과, 볍씨의 부모님이신 밥선생님 두 분께서 해주신 반찬으로 점심을 먹습니다. 볍씨의 밥문화 중 또 다른 것은 고기가 나오는 것은 일 년에 두 번 정도라는 것. 김치를 담그는 날과 복날 삼계탕이 아니면 식단에서 고기를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볍씨에서는 서로를 건강하게 하는 식단을 꾸리려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식단을 공부해서 그 식단으로 우리의 식탁을 채우는데 건강한 식탁을 위해서는 기름이 너무 많이 쓰인 음식인가, 맛이 너무 자극적인가 같은 여러 가지 조건을 통과해야 합니다. 우리가 먹는 것이 곧 몸을 만들기 때문에 건강한 먹을거리를 위해서 고민은 모두와 함께 합니다. 너무 많이 소비되고 있는 고기, 채소의 다양한 맛을 알지 못 하는 아이들보다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는 이, 건강한 음식 문화를 아는 이로 함께 자라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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